굴업도 백패킹
시작에 언제나 대단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을 하나씩 타고 들어가다 ‘백패킹 3대 성지 굴업도’라는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로 가서 덕적도에서 나래호라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한 번 더 들어가야 하는 곳. 억새로 뒤덮인 풍경이 멋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배편을 예매했다.
배를 타고 여행해 본 적도 없는 내가 환승까지 해야 하는 여정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실수일지 몰랐다. 덕적도에 도착했을 땐 어디서 배를 갈아타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내린 곳에서 기다렸다가 다른 배를 타면 되는건지, 아니면 또 다른 선착장이 있어서 그 곳에서 타야 하는건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엔 내린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배가 오겠거니 여유를 부렸지만, 탑승 시간이 거의 다 되어도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자 불안해졌다. 다행히 선착장 앞에서 해산물을 파는 어르신들께 물어 다른 선착장으로 달려가 늦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굴업도로 가는 중 배가 그물에 걸려 한 시간 넘게 표류했다. 처음엔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었지만 점차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근처의 배들이 나래호로 몰려들기 시작할 때는 여차하면 뛰어내려 옮겨타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좀 안심하기도 했다. 해경이 출동해서 나래호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사진을 찍으려는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배가 기울어지기도 했다. 안전을 위해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에, 여차하면 뛰어내려야지 대기가 웬 말이냐며 항의하는 아저씨들의 아우성에 슬픈 사건 하나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해경이 배로 건너와서 처음 한 일은 음주측정이었다. 경로를 이탈해 그물에 걸린 것이 음주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매뉴얼처럼 해야하는 일인지도 몰랐지만 다행히 음주측정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잠수복을 입은 해경이 배 밑으로 들어가 그물을 잘라냈다. 배 안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해경에게 감사를 표했고 해경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물이 제거되자 배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고 주변에 몰려들었던 선박들도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섬.
꽉 막힌 고속도로의 정체가 아닌,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던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