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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Oct 22. 2021

타고 가

굴업도 이장님

굴업도에 도착했을 땐 선착장에 트럭 몇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장님 민박, 오세요”

“장할머니 민박 여기요”

 

그 소리를 따라 사람들의 무리가 나뉘기 시작했고 자신이 예약한 민박집 트럭에 배낭과 짐을 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민박집에 식사를 예약했거나, 숙박을 예약한 손님들은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트럭을 타고 갈 수가 있었다. 그러한 사정을 알리 없는 나는 마을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걷기 시작했다.

 

몇 대의 트럭이 먼지를 흩날리며 언덕길을 오르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트럭 짐칸에 탄 사람들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나 또한 무심한 듯 조금 부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던 것 같다. 몇 대나 나를 지나쳤을까. 그렇게 혼자 터벅터벅 언덕길을 오르는데 나를 지나쳐 올라가던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창문 너머로 검게 그을린 얼굴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타고 가.”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감사하다 말하고는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배낭으로 가득 찬 짐칸에 쪼그려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 공간을 만들어줬다. 트럭은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을 덜컹거리며 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 도착했다.

 

트럭이 멈춰 선 곳은 이장님댁이었다. 나를 태워준 어르신이 굴업도 이장님이었고 민박집을 운영하고 계셨다. 식사도 숙박도 예약하지 않은 내게 베푼 대가 없는 친절에 나는 민박집에서 판매하는 칭따오 맥주 몇 캔을 사는 것으로 보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칭따오를 비롯한 수입 맥주를 취급하는 곳은 굴업도 내에서 이장님댁밖에 없었다. 섬마을 이장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타고 가.

무심하게 툭 던져 뱉은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던 섬의 풍경만큼이나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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