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마거릿 와일드의 그림책 <여우>(2012, 파랑새 출판)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신촌의 한 강의실로 향한다.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고인 물을 걷어내고 싶었을까. 얼마 전부터 ‘필사’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단톡 방에 떨어지는 숙제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글을 맛볼 수 있는 것이 마냥 즐거울 뿐이다. 지난 14일, 강의실에 들어서자 여태까지 놓여있던 책상들이 다르게 배열됐음을 눈치챘다. 둥그렇게 마주 본 원형이라. 아마도 오늘은 토론하려나 보다 직감했다. 당일 배포된 수업계획표엔 ‘그림책 <여우>(마거릿 와일드 작, 파랑새) 토론 및 북 리뷰 쓰기’라고 적혀있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부터 흰머리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모인 성인 수업에 ‘그림책’이라니. 전날 미리 읽고 오라는 숙제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난감했다. 게다가 표지엔 ‘IBBY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최우수상’이라는 스티커가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을 만큼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다. 처음엔 필자보다 책 읽기를 유난히 싫어하는 9살 아들에게 맞겠다고 여겼다. 토론을 앞두고 급히 두 번 읽었다. "내 생각이 짧았군." 약간의 정보가 더 필요해 인터넷을 뒤졌다. 마치 독서 토론의 바이블인 양 수많은 리뷰가 쏟아져 있었다.
‘권선징악’. 스쳐 지나가듯 책을 훑었을 때, 이 주제인 줄 알았다. 여느 동화가 그렇듯 '선과 악이 등장하고 결국엔 악이 벌을 받는' 패턴일 거라 속단했다. “날지 못하는 까치와 앞을 잘 보지 못하는 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상부상조해. 그런데 어느 날 불쑥 교활한 여우가 개입되네. 그는 평화로운 둘 사이의 관계를 갈라놓고 훼방을 놓지.” 하지만 이렇게 당연한(?) 시놉시스로 토론이라는 밥상이 차려질지 만무하지 않은가. 다시 정독했다. 두세 번을 거듭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우>엔 세 마리의 동물이 등장한다. 개와 까치 그리고 여우. 산불로 날개를 다친 까치에게 한쪽 눈을 잃은 개가 다가와 위로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까지 내주면서. 머지않아 둘은 서로의 눈과 날개가 되어 우애를 쌓는다. 어느 날, 둘 사이에 여우가 끼어든다. 그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경계심이 많은 까치의 거부로 여우는 상처 받는다. 까치의 날고 싶은 욕망을 이용해 여우는 둘 사이를 갈라놓을 계략을 짠다. 마치 지금껏 자신이 받았던 외로움을 느끼게 하려는 듯.
당초 악역이라 짐작했던 ‘여우’가 책의 제목으로 선택됐다. “훼방꾼을 왜 주인공으로 정했을까?”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작가 마거릿 와일드(71)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색다른 점은 '3인칭 화법'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방의 속내를 꿰뚫는 '1인칭 적 접근'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우>는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처음 보는 이상한 것이 있어. 그게 바로 우리 모습이야. 자, 이제 꽉 잡아!”
개가 까치에게 건네는 말이다. 거센 불길에 날개를 다친 까치를 위로해주려 부단히 도 노력한다. 어떤 말도 도움이 안 된 까치에게 더욱 정성을 다한다. 자신의 보금자리까지 기꺼이 내주면서. 심지어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까치가 뒷말을 내뱉자 "여우는 좋은 애야. 그렇게 말하지 마."라며 두둔했다.
“여우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야.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조심해.”
까치는 평화로운 둘 사이에 끼어든 불청객을 경계한다. 작가는 까치의 심리에 동화된 듯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어. 여우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어.”라고 썼다. 더욱이 거센 산불로 트라우마에 휩싸인 까치 앞에 ‘붉은색 털’을 입은 여우를 등장시켰다. 이때 까치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인다.”며 복잡한 심리상태를 부채질한다. 여우를 반겨주는 개와 달리 ‘여우가 자신의 다친 날개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고 묘사함으로써 까치의 심리는 극한으로 내몰린다. 여기에 개와 공유하던 '동굴' 속에 여우의 냄새가 침범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친구 하나 없는 여우는 까치만큼이나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철저하게 버림받은 여우는 왕따의 가해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동안 개의 등에 업혀 이루지 못한 욕망을 좇았다고 생각하지만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이라고 일정한 거리를 뒀다. 더 높은 것을 원한 까치는 개와 신의를 저버리고 동굴을 탈출한다. 잠시 하늘을 나는 느낌을 갖게 한 여우는 한참을 달려 까치를 ‘붉은 사막’에 떨어뜨린다. 마치 벼룩이라도 털어 내듯.
세 장면을 이동하면서 각 장면의 주인공의 심리가 변한다. 개의 입장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대립의 당사자로 보이는 까치와 여우의 입장으로 흐름을 바꾼다. 작가는 선과 악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듯 관점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킨다. 훼방꾼이라 생각했던 여우의 입장에서 보면 까치는 자신의 뇌관을 건드린 가해자이며 까치 이상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던 외로움이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앞서 작가가 <여우>로 제목을 지었던 이유도 "누구나 예측 가능한 통념이라면 아무 의미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