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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문 Aug 15. 2019

여전히 잘 모르고 잊혀가는 이름들에게

김애란의 첫 산문집,『잊기 좋은 이름』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눈부신 순간을 맞은 적이 있나요?



작가 김애란의 신작이 나왔다. 7월 5일부터 정식 출간이라고 하였으나,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매대에 놓여있는 걸 발견하는 바람에 하루 더 일찍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우연한 기회로 예상보다 일찍 읽어본다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해 단편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데뷔했다. 이후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의 작품을 써내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는 소설가다.


 김애란은 사실 필자가 애정하는 작가 중 하나다. 『비행운』으로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한 후 나는 도서관에서 바로 『달려라 아비』를 대여해 읽었다. 첫 번째는 수려한 문장에, 두 번째는 재기발랄한 상상에, 세 번째는 무거운 현실을 담아내는 것에 반했다. 그 이후 김애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니, 김애란의 매력은 단연 단편소설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발랄한 상상을 곁들여 가볍지만은 않게, 다소 묵직하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짧은 호흡으로 주제를 전달하는 단편 소설에서 더욱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김애란이 선보인 작품은 소설집이 아닌 산문집이다. 표지에 ‘김애란 산문’이란 소개를 떡하니 달고 있는 이 책의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이다.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제목마저도 김애란답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제목이다. 비록 필자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단편소설집은 아니었으나, 좋아하는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했던 건 사실이었다. 대체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평소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문장과 표현력이 나오는 건지 너무도 궁금했다. 『잊기 좋은 이름』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를 키운 팔 할, 그리고 이 할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자신과 그의 주변,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등단 이후였던 2002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가 기록해왔던 삶의 조각들을 엿볼 수 있다. 책의 목차는 ‘1부 : 나를 부른 이름’, ‘2부 : 너와 부른 이름’, ‘3부 : 우릴 부른 이름들’, 이렇게 총 3부로 나뉜다. ‘1부 : 나를 부른 이름’에선 작가의 가족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책의 서두에는 ‘맛나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맛나당’은 작가의 어머니가 20년 넘게 손칼국수를 판 가게다. 생활력 강한 어머니는 국수를 팔아 번 돈으로 세 딸을 가르치고, 생활을 꾸리고, 나중에는 집도 장만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제껏 경험한 거주 공간 중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곳이 ‘맛나당’이라고 했다. 자신을 키운 팔 할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정하면서도 씩씩한 여성인 그의 어머니가 꾸린 그 공간의 냄새가 여전히 작가에게 오래 배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사범대에 가길 원하셨던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본 것이 인생의 결정적 거짓말이었다는 작가. 자신을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이 작은 이 할이 인생을 바꿨으나,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몸과 마음을 길러줬던 그 팔 할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는 작가. ‘갈수록 뼈가 닳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가는 팔 할, 자식에겐 한없이 다정하고 타인에게 무례한, 복잡하고 결함 많은 씩씩한 여성’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름을 닮은 작가



 무더운 여름에 출판된『잊기 좋은 이름』을 읽다 보면 여름과 관련된 그의 일화가 등장한다.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네가 있어’와 같은 청량한 가사를 지닌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면 이마에 여드름이 잔뜩 난 열다섯의 자신과 이따금 그런 제 뒤에 다가와 키를 재어보던 남자아이가 생각난다는, 그런 풋풋한 이야기다.


 사실 작가 김애란에게 ‘여름’의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했었다. 김애란은 ‘여름을 닮은 작가’라고 불린다. 단편집 『비행운』에서도 여름과 물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고, 『바깥은 여름』에서는 아예 제목부터 ‘여름’을 집어넣기도 했다. 두 소설 다 표지가 파래서 그런지, 김애란 특유의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그런 색깔이 떠오른다. 깊은 물 속 같은 그런 어두운 청록빛의 푸른색. 어딘가 모르게 잔잔하고 뜨겁게 울컥하면서도 축축하게 아직 물의 기운이 남아있는 듯한, 그런 여운도 함께,


 그러나 그의 산문집에서는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여름의 축축함이 조금 마른 듯 보였다. 소설인 만큼 물기 가득 머금은 여름이 아니라, 햇빛에 기분 좋게 옷을 말리러 가는 느낌. 그만큼 힘을 빼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자신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작가 자신과 작가를 둘러싼 세상을 드러내기 위한 글은 또 새로운 매력의 발견이었다. 김애란의 여름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축축하지만, 그 온도 차가 비교적 줄어들었다고나 할까. 묘한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읽히는 그의 소설이 조금 낯설기도 하다. 어쨌든 여름은 김애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계절인 것만은 확실하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그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뮤즈인가보다.



수려한 문장의 힘



 말수가 적고 순진한 시골 청년 같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가 아주 어릴 적일 때, 작가가 태어나기도 전일 때 부모님의 연애담을 묘사할 때 등장한다. 똑부러지는 모습의 어머니와 내성적인 아버지가 한적한 바닷가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참 아름답다. 책의 뒷부분에서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열여섯 소년소녀가 숲속 물가에서 첫 입맞춤을 하는 장면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실제 이야기, 작가의 실명도 그대로 나오는 에세이가 맞는데도 자꾸만 소설인 줄 알고 빨려 들어갈 뻔했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는 문장들의 힘이다.


 ‘너를 안고 나는 내 팔이 두 개인 것을 알았다. 나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은 듯 ’그래, 나는 팔이 두 개였지‘ 중얼거렸다. 나는 곧 내 다리가 두 개인 것과 내 입술이 하나인 것도 알게 될까 두려웠다. 그러다 정말 내 이름을 알게 될까 봐.’

-『잊기 좋은 이름』, 76p



작가들과의 관계



『잊기 좋은 이름』의 ‘2부 : 너와 부른 이름’에선 김애란이 애정하는 작가들이 여럿 나온다. 김연수, 편혜영, 조연호, 윤성희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이들이 김애란의 에세이에서 작가라는 직업 이외의 새로운 면을 들킨다. 어린 딸의 아빠인 김연수, 세련된 이미지지만 자신의 책의 장점을 열 가지 이상 말해보라는 엉뚱한 모습을 지닌 편혜영, 의외로 다정하며 웃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조연호 시인, 내성적일 것 같지만 활달하고 빈틈이 많은, 작품도 좋고 사람도 좋은 윤성희.


 작품에선 알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작가들의 성격부터 스타일까지 알 수 있어 신기했다. 작가는 작품 내내 ‘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소설을 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통점 하나 없어도 소설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고, 긴긴밤 대화를 나눴을 그들이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자 김연수의 작품 속에선 두 살배기였지만 이후 훌쩍 커버린 딸을 보고 책으로만 읽었는데도 그 사람을 잘 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는 그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뭔가 익숙하고 반갑고 오래 본 것 같은 그 심정.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나 또한 작가의 어머니와 위의 작가들을 보면 속으로 반가워할 것 같다. 혼자 내적 친분을 쌓아버리고 말았다.



세월의 흐름


 20대 초반, 중반, 후반 그리고 어느덧 30대의 중반을 넘어선 김애란. 그때 머릿속에 떠돌던 상념들과 그것들을 끄집어내 썼던 메모들, 발표한 작품들까지 세월이 묻기 마련이다. 김애란은 그동안 수험생, 취준생, 노량진 고시생, 고시원에 사는 청년, 이주 여성 등 다양한 주인공들로 소설을 써왔다. 작가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레 주인공들의 연령대도 서서히 높아졌다. 그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게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작가는 자신이 썼던 작품의 결말에 대해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나, 현재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인간은 참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고. 그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뭐가 현실적인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그때의 김애란이 썼던 문장과 지금 김애란이 쓰는 문장은 또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다.
그 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이덕무의 시간과 최북의 시간은,
정약전의 시간과 김광석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진다.”

- 『잊기 좋은 여름』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작가는 어느 날 이전 원고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고치고, 버리다 ‘이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을 스쳐 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들.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르는 이름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름이 우리의 곁에 존재한다.


 그 이름들과 이름이 불리던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적어냈다는 그의 첫 산문집. 이미 그 이름이었거나 이름이 될 많은 분께 전한다는 그의 덧붙임처럼, 책장을 덮고 나면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어보게 된다. 나의 이름 석 자부터, 나를 있게 한 주위의 이름들까지 하나씩, 천천히, 전부 애정을 담아 읊조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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