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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n Oct 21. 2021

노래가 된 시, 시로 된 회화

[예술 단상] 정가(正歌) 그리고 시인 이상 

 2016년 10월 13일. 뜻밖의 노벨상 수상이 이루어졌다. 문학상 수여 115년 만에 문학작가가 아닌 대중가수가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는 노래 가사가 문학작품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인 것이었다. 노래를 위한 가사이기 이전 가사는 글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충분히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노래가 된 시

 노래 가사가 문학으로 여겨진 것이 비단 밥 딜런이 시작이라고 볼 순 없다. 이미 우리는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접했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고려 후기 때부터 나타났다고 여겨지는 시조(時調)를 시작으로 가곡, 가사까지 시를 선율에 얹어 부르는 노래를 정가(正歌)라고 한다. 민요나 판소리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전통 성악이다. 중인, 선비층에서 주로 즐겨 시를 짓고 노래로 불리던 장르로 음악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예술이다. 위의 사진처럼 지어진 시는 가객에 의해 노래로 불렸고 이후 기악반주가 함께 되어 연주된다. 이렇듯 우리에겐 본래 시와 노래는 하나였으며, 노래 가사를 시처럼 여기는 것이 어색하고 신기한 사건으로 볼 순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1876년 부산의 개항을 시작으로 개항되면서 서구문화가 차례로 들어오면서 서양음악이 스며들게 되었다. 근대를 알리는 현대식 극장이 등장과 노래가 유성기에 녹음이 되기 시작 그리고 라디오 방송의 송출로서 음악 향유의 방식이 달라지게 되었다. 또한 가장 큰 영향이었던 서양식 학교교육 정책이 크게 작용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정가는 대중들에게 점차 괴리감과 이질감으로 변했고 결국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노래 가사로 보다는 시로써 감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정가(正歌)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예술로 전승이 되어오고 있으며 지금 현시대, 현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음악으로 끊임없이 발전, 노력 중이다. 

 



      시로 된 회화     


 정가가 노래가 된 시이고, 밥 딜런에 의해 노래가 공식적으로 문학화되었다고 한다면, 시인 이상(李箱, 1910~1937)은 문학을 회화화하였다. 



 '시 제4호'이다. 이 시뿐만 아니라 이상의 시는 글로 옮길 수가 없다. 시를 이미지처럼 보아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가 정녕 문학 작품처럼 읽어야 하는 것인지, 읽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당황스럽게 한다. 이 시를 읽는 관람하고 직관적으로 얻어지는 것은 단지 ‘0부터 9까지의 숫자 11줄이 만든 직사각형’ 일 뿐이다. 마치 회화 작품을 보듯 시를 볼 수밖에 없다. 즉 독자가 시를 그림처럼 감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 더 시를 관람하면, 숫자가 그대로 적혀있는 것이 아닌 거울에 비친 듯 반대로 적혀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의 마지막에 적혀있듯 환자의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환자가 보는 세상은 뒤집힌 시각, 즉 정신적으로 아픈 환자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시에서 보이는 것은 숫자로 된 직사각형을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점들이다. 0~9가 반복되고 있는데, 가운데에 점이 찍혀서 한 자리씩 옮겨지고 있다. 이 점을 소수점처럼 여기고 한 줄씩 보면 점점 숫자가 작아지면서 결국 0을 향하고 있다. 숫자판 아래 적힌 ‘진단 0:1’에서도 언급되듯 결국 이 환자는 0, 죽음을 진단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노래가 된 시 그리고 시라는 이름의 회화, 

예술의 장르화는 이미 예전부터 무너져 있었고 본래가 하나로 국한될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또는 전통예술과 현대 예술처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은 더 이상 합당한 것이 아니다. 예술의 범주과 개념화를 넘고 끝없이 나아가 예상하지 못할 만큼 획기적이고 기발한 예술이 나오길 그리고 우리에게 더 많은 감정을 전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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