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나의 은신처를 지키는 일
팔꿈치의 통증을 참아가며 새벽까지 코바늘을 움직이다 생각했다. 선물용도, 판매용도 아닌 이 가방을 왜 이토록 미친 듯이 뜨고 있는 걸까.
덕질: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을 파고드는 행위
사전적 정의를 빌리자면, 나는 명백한 뜨개덕후다. 리빙박스마다 가득한 털실 뭉치들, 책장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도안집들, 그리고 뜨개 가방과 인형이 줄지어 나오는 유튜브 알고리즘까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뻑뻑한 눈과 뭉친 어깨를 견디며 몇 시간째 바늘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이 그 증거다.
조용하고 무난했던 학생 시절,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아이였다. 마땅한 재능이 없어 매년 기초조사서 '취미'란에는 '독서'나 '음악감상' 같은 무색무취한 단어들을 적어 넣곤 했다. 그러다 중학교 동아리 시간에 만난 코바늘 수업은 막막했던 '취미'란을 채울 나만의 색깔을 처음으로 채워주었다. 학교에서는 방석을 만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자투리 실로 서툰 눈사람 인형을 빚어내던 시간. 한여름 버스 정류장에서도 실 뭉치를 꺼내 들던 나를 보며 친구들이 슬쩍 거리를 두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소중한 풍경이다.
시간이 흐르고 실력이 쌓이면서 나의 뜨개질은 누군가를 향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정성만 가득한 '무용한 선물'을 떠넘기는 꼴이 되기도 했지만, 남을 위해 무언가를 빚어내는 시간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를 남겼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아이의 몸을 전시장 삼아 직접 만든 카디건과 모자, 가방을 마음껏 입히며 그 온기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뜨개질이 절실했던 순간은 일상에 치일 때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가득했던 직장의 일과를 간신히 버텨내고, 역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어린 아이들을 간신히 재우고 난 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실을 잡으면 비로소 평온이 찾아왔다. 정해진 도안대로 바늘을 움직이면 반드시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 그 단순하고 정직한 감각은 하루 종일 느꼈던 무능함과 무력감을 씻어주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었다.
직접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퇴직 후에도 걱정 없겠다"며 치켜세워 주지만, 사실 나는 도안 없이는 무엇도 시작하지 못하는 '반쪽자리 니터'일 뿐이다.
앞으로 이 덕질이 나의 업이 되는 '덕업일치'의 순간이 올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바람은 소박하다. 사고 싶은 실을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 그리고 뭉친 어깨를 달래 가며 이 즐거운 노동을 멈추지 않을 정도의 체력. 그 두 가지만 허락된다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바늘을 들 것이다. 나를 지탱해 주는 이 포근한 세계를 잃지 않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