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큐브의 범재들
실천28. 아이와 함께 새로운 것 배우기
돌올돌내돌돌올돌내, 시시시내반반반, 내돌올돌내돌돌올돌.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간다는 것도 아니고, 요상한 주문도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은 남자아이와 생활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에서 <스피드 큐브의 천재들>을 보고도, 좋아하는 가수인 <페퍼톤스>의 두 멤버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루빅스 큐브를 맞추는 것을 보고도, 큐브를 구입해서 직접 맞춰볼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그저 머리 좋은 사람들의 취미라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큰 아이의 생일에 둘째 아이가 자신의 용돈을 털어 3천 원짜리 큐브를 선물했다. 별 다른 의미 없이 가격대에 맞춰 고르다 보니 선택한 것인데, 이 작은 장난감이 승부욕과 열패감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가져왔다. 유튜브 영상 속에서는 손놀림 몇 번에 무작위로 섞인 색깔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는데, 내 손에 들린 큐브는 같은 색깔끼리 한바탕 다투기라도 했는지 한 줄이라도 맞춰보려는 노력이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는 것이다.
두 아이들에게도 큐브를 맞추는 일은 마술사가 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일과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았다. 몇 번 시도하다가 답답해서 그만 포기하려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피아노선생님이 너무 어려운 악보를 주고 가셔서 힘들다고 자주 울었는데 지금은 가장 편하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그 곡만 연습하지 않느냐며 아이에게 큐브를 공략해 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시큰둥하던 아이도 큐브로 엄마와 '대결'하자는 말에 조금씩 흥미를 보였다. 게다가 공부 가르쳐 줄 때 그렇게 잘난 척하던 엄마가 "내반올시내랑 올돌내까지 했는데 다음이 생각이 안 나. 이다음에 뭐 해야 되지?", "마지막 점공식 하는데 다시 다 섞여버렸어. 이것 좀 다시 맞춰줘." 하며 자신보다 부족한 모습을 보이자 아이의 어깨며 콧대가 한껏 치솟아 큐브연습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아이에게 도전장을 던져놓고 나도 마냥 질 수만은 없어서 아이들 잠든 후에 유튜브에 올라온 '큐브 초딩공식' 영상을 0.8배속으로 몇 번씩 반복하고, 밥 뜸 들이는 틈에 포스트잍에 적어둔 공식을 보며 각 색깔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기를 반복했다. '아, 이래서 어릴 때 공부하라는 것이구나.' 몇 번을 한숨 쉬었는지 모른다. 내 한숨 속 결정을 모아 덩어리로 만든다면 큐브 한 개는 족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 공부 봐줄 때 '아휴, 이거 또 헷갈려하네. 이거 여러 번 설명해 줬잖아.', '집중 좀 해 봐. 집중하면 이거 금방 할 수 있는 건데 자꾸 딴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며 두 아이를 향해 내쉬었던 한숨을 다시 거둬들이고 싶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나보다 30살은 어린 두 큐브 사부님들은 나이 많은 제자가 몇 번이나 똑같은 곳에서 헤매도 답답해하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시시시내반반에서 각각의 '시'가 어떻게 다른지(정면에서 시계방향, 오른쪽에서 시계방향, 위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시시시' 공식이다), U자 공식에서 노란색을 어떤 위치에 두어야 더 맞추기 쉬운지 지치지 않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두 사부님이 인내심으로-근데 이제 우월감을 곁들인- 이끌어 준 덕분에 드디어 나도 느리게나마 큐브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속도감 있게 큐브를 맞추려면 공식을 외우는 것과 함께 숙련된 손놀림도 중요한데 내 손가락은 아직 나무늘보처럼 움직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두 아이의 경쟁자로 이름을 올릴 수도 없고 아이들도 '엄마와의 대결'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큰 아이는 중딩버전, 판다버전 등 초급공식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공식을 연습 중이고, 둘째 아이도 매번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며 큐브 신기록 경신 기록지까지 만들어 책상에 붙여두었다. 대결 상대 모두가 나를 이토록 무시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 다음 대결 주제는 코딩이 좋을까, 탁구가 좋을까. 두 사부님과 나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근데 이제 음흉함을 곁들인-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