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굴뚝 하나

by 여울

어렸을 적,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주면
잠잠하던 어둠 속에서
불길이 먼저 깨어났다.

그 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따뜻함이 손끝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번져왔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래서 나무를 더 넣어주고 싶었고,
불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환해졌다.

불을 때면
반드시 연기가 생긴다.
불이 제 몫을 다한 뒤
남기는 숨 같은 것이다.

그 연기는
굴뚝을 따라 밖으로 빠져나가야
아궁이는 편안해지고
그을림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굴뚝이 막히면
연기는 길을 잃고
다시 안으로 돌아온다.
따뜻해야 할 자리에서
숨 막힘이 먼저 찾아온다.

우리의 삶도
그것과 닮아 있다.

우리는 날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던져
하루를 살아낸다.
일을 하고, 사랑하고,
참고, 견디고, 애써 웃으며
자신을 태운다.

에너지를 쓰고도
흘려보낼 곳이 없으면
마음도 연기처럼
안쪽에 그을림이 남기 시작한다.

불안과 공황,
이름 붙여진 마음의 증상들은
어쩌면
막힌 굴뚝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예외는 없다.
불을 많이 때는 사람일수록
굴뚝도 그만큼 커야 한다.

하지만 삶은
계속 더 태우는 일만은 아니다.

때로는
불을 더 넣는 것보다
나무를 내려놓는 용기가
삶을 오래 따뜻하게 한다.

불을 줄일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온도를 지킬 수 있고,
쉼을 아는 사람만이
다시 불을 살릴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굴뚝이
공간이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다.

아무 말도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연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고
그저 곁에서 받아주는 사람.

그 앞에서는
마음껏 불태워도 되고,
마음껏 토해내도 괜찮다.

삶이 남긴 열기와
말로 다 하지 못한 숨까지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

인생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불은 위험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오래,
더 깊게
타오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깨닫는다.

나 역시
누군가의 불을 태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연기를 받아주는
굴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삶은
서로의 온도를 건네며
번갈아 불을 지키는 일이다.

마음껏 불태우고,
마음껏 배출하며,
때로는 불을 내려놓고
서로의 숨이 되어 주는 것.

그렇게 우리는
타지 않고,
꺼지지 않으며
끝내
따뜻한 삶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