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누군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해야 할 역할을 먼저 떠올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표정을 챙기느라
쉼마저 마음을 졸이며
허락받듯 시간을 지나간다.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여전히
어딘가에 매달린 채로.
얼마 전, 양양으로 여행을 갔다.
북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되는’
드문 순간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한 여행에서는
늘 누군가의 필요가 먼저 떠오르고
나의 쉼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난다.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날 만난 북카페는
내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던
쉼의 풍경에 가까웠다.
멀리 바다가 시야에 걸려 있었고
통창 너머로
소나무 숲이 이어졌다.
그 풍경을 가장 편안하게 바라보도록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책들은 장르별로 가지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천장은 높아
생각까지 함께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는
그 공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담백하게 맛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나를 좀 앞에 두자.’
그래서 마음을 정했다.
오늘만큼은
이기적으로 쉬어보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하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고
눈치를 보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 깊은 곳으로
무언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행복은
그렇게 요란하지 않게 찾아왔다.
부족함도,
미안함도 없이
그저
‘충분하다’는 감각으로.
더 놀라웠던 건
그 이기적인 선택이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을 보냈고
저녁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로운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날의 쉼은
이기적이어서 가능했고,
작정했기에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을.
마음을 정했다면
중간에 흔들리지 않는 것도
쉼의 일부라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잠깐 쉬는 척하다가
다시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기로 했다면
그 시간 안에
온전히 들어가 보는 것.
이기적일 때는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적당히가 아니라
끝까지.
그렇게 들어간 시간은
온전히 마음 안에 남는다.
쉼은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날 이후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흘려보내려 애쓰지 말고
그 시간에 남은 감각을
가슴 깊은 곳에
가만히 두고 오면 된다.
충만은
시간이 많아서 오는 게 아니라
아무 걸리적거림 없이
하나에 온전히 잠길 수 있었을 때
그 시간의 끝에서
결과처럼 남는다.
가끔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
작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건
도망이 아니라
회복이고,
무책임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날 양양에서 배운 건
이것이었다.
진짜 쉼은
나를 뒤로 미루지 않을 때 시작되고,
진짜 충만은
그 쉼을 스스로에게
허락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