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그늘 Mar 16. 2022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오빠

내가 널 좋아하면 왜 안 돼?

"난 널 사랑하고 있어, 나희도. 무지개는 필요 없어."

- <스물다섯 스물하나> 9화 엔딩

백이진 거기 어디야?


<섹스 앤 더 4티> 5화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푹 빠져 있다. 친구들과 당연하게 '스다스하'라고 불렀는데, '요즘 친구들'은 '2521'로 부르는 걸 알고 조금 부끄러웠다(라떼 어르신들이 HOT를 '핫'이라 불렀던 게 떠올랐다). 근데 또 이걸 '이십오이십일'로 불러야 할지, '이오이일'로 불러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래도 90년대 감성이라면 역시 292513(=STORM, 이것이 옷일세!) 느낌, '이오이일'이겠지?  


드라마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1998년 뜨거웠던 우리들의 청춘' 정도 되겠다. 주인공 나희도(김태리)는 18세, 백이진(남주혁)은 22세. 둘의 첫 만남은 신문 배달 알바생이던 백이진이 던진 신문에 나희도의 집 마당에 있던 오줌 누는 소년 동상이 '고자'가 된 순간. 두 번째 만남은 나희도의 단골 가게이자 백이진의 오후 알바 장소인 동네 만화방. 나희도는 동네 알바는 혼자 다 하는 듯 자꾸 마주치는 백이진이 신경 쓰인다. 대체 이런 우연이 어디 있냐고?


10대 시절을 떠올려 보자.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알던 좁은 동네에서 드라마 같은 우연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났다. 시험 기간에 놀러 간 도서관에서 부딪힌 '고등학생 오빠'를 집에 가는 버스에서 다시 만난다거나, 버스를 타고 가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옆 버스에 탄 (짝사랑하던) 절친 오빠와 눈이 마주친다거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돌아봤더니 절친이 중학생 때 좋아하던 고등학생 오빠가 성년이 되어 웃고 있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이게 다 10대 시절, 내가 겪은 일들이다.


1. 베프의 오빠

어릴 때부터 마르고 안경 낀 남자만 보면 좋아했다. 지적이라서? 사실 학교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똑똑한 이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누군가 이상형을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하얗고 마르고 안경 낀 남자!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추가되면 완벽에 가까웠다. 그건 바로 '오빠'.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 오빠를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 오빠를 좋아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 나보다 먼저 어른들의 세계에 가까워지거나 어른이 된 오빠들에게선 또래 남자들과는 다른 분위기(냄새?)가 풍겼다. 눈높이가 같은 또래 남자들과 자주 눈싸움을 하던 나는, 나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어깨를 구부정하게 만드는 오빠들에게 자주 반했다.  


어쨌거나 마르고 안경을 꼈다는 이유로 좋아한 많은 남자들 중, 떨리는 마음으로 햄버거라도 같이 먹은 '오빠들' 중, 울며 불며 좋아한 남자 친구 가운데 인생 베프의 친오빠도 있다. 어른들은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고 했던가? 10대 시절 내게 세 살 연상은 완벽한 나이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1998년, 고등학생이 된 3월. 학교가 끝나면 시내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베프의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었다. 학원은 당연히 땡땡이. 공부 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가정에서 일탈하기 가장 좋은 핑계는 당연히 공부였다. 노래방에서 놀다 학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완전범죄가 되는 듯했다(물론 꼬리가 길면 밟힌다).


베프의 오빠를 향한 관심은 중학교 말부터 시작됐다. 오빠는 키가 컸고, 말랐으며, 당연히 안경을 꼈고, 심지어 공부를 잘했다. 그 시절, 그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인문계 ‘우반(성적 우수자들을 모아 놓은 반)'이었다.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붙어 다니던 베프와는 닮은 듯 다른 외모, 공부 잘하고 의젓하며 심지어 넥스트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남자. 나는 농담처럼 친구의 집에 갈 때마다 물었다. "너네 오빠도 있니?"


어쩌다 농담이 진담이 된 건지 모르겠으나 고등학생이 되고 난 뒤 베프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나 너네 오빠 좋아해, 응원해 줄래?" 날 가족보다 사랑했던 베프는 뜯어말렸다. 현실 남매가 그러하듯, 오빠의 안 멋진 구석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성들에게 적잖이 인기가 있던 베프의 오빠는 처음엔 나의 관심을 그러려니 했다. 이놈의 인기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이 알바를 하는 가게에 출근 도장을 찍는 날이 이어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듯했고, 어느 날은 단념을 시키려는 듯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우리 집 사정 안 좋은 거 알지? 그래서 입학만 하고 휴학한 거야. 좀 있으면 군대 갈 거고."



2. 오락실 오빠

1999년. 18세가 되었지만, 고 2는 시작되지 않은 늦겨울. 나는 오락실 죽순이였다. 그 시절 만남의 광장은 역 앞에 위치한 대형 오락실. 그곳 2층엔 펌프 오락기 2대와 코인 노래방 2대가 있었다. 친구 따라 학교 댄스부에 가입한 나는 연합 동아리를 추진 중이던 남고 댄스 부원들과 그곳에서 자주 만났다. 누구는 펌프를 하고,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구는 철권을 하던 곳에서 나는 바처럼 생긴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락실에서 쓰는 돈이 아깝기도 했고, 사람 구경하는 걸 유난히 좋아하던 때였다. 아닌가, 동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집이 폭삭 망한 뒤였으니까.


동전교환기에 동전을 넣는 일을 비롯해 은근히 관리 단속할 게 많던 그 공간을 지킨 건 성인 알바생 한 명. 어느 날부턴가 내 옆엔 그 알바생이 있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썼던 이미지만 기억날 뿐,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오빠는 '백이진'처럼 휴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나보다 인생을 더 살았고, 어딘가 '그늘'이 있었다. 그 시절에 사연 없는 집은 없었으니까.


어떤 날은 "넌 고등학생이 오락실에서 살 거냐?"라고 잔소리를 하다가도, 어떤 날은 무턱대고 자기를 좀 웃겨달라고 했다. 사람 웃기는 것만큼은 욕심이 있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는 박수를 치거나 깔깔대는 대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당시 내 눈엔 순정만화 재질의 낮은 웃음소리 '훗'. 가끔 내 머리를 흐트러트렸고, 헷갈리는 소리도 했다. "전에 봤던 친구가 너 예쁘대. 고등학생이라니까 깜짝 놀라더라. 넘보지 말라고 했어." 친오빠도 안 하는 단속을 그대가 왜, 묻고 싶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락실 밖에서 만난 건 딱 한 번. 앞으로는 오락실에서 볼 수 없을 거라며 밥이나 사주겠다고 했다. 군대를 간다고 했던가? 학교에 간다고 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그날의 내 복장뿐. 한껏 꾸미고 나간 것이 분명할 텐데, 촌스러운 깻잎 머리에 큐빈핀까지 꽂고 있었다(왜 청춘의 패션은 대부분 부끄러운가?). 아직 겨울인데, 미니스커트를 입고 오들오들 떨던 것도 떠오른다. 신발은 '강북 패션'의 상징과도 같던 뾰족코 구두...   



3. 군대 간 오빠

버스에서 고개를 돌려 옆 버스를 보다 눈이 마주쳤다는 그 오빠 이야기다.


당시 나는 낭랑 18세와는 거리가 먼 고 2 생활에 절어 있었다.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어느 주말. 나란히 달리는 경찰버스 안을 들여다보다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군대에 갈 거라(며 내 마음을 거절했)던 베프의 오빠. 의무경찰에 지원해 지역 경찰서에 자대배치를 받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찰서 앞까지 달렸다. 아까 본 경찰버스에서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내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화면이 슬로 모션으로 바뀌더니 '오빠'가 등장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하고 싱긋 웃던 얼굴.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군인과 고등학생의 만남, 편지와 삐삐 음성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의 휴가엔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사 온 '검정 정장'이나 친구들이 '나이트 갈 때 입는 옷'을 입었다. 최대한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고 3이 되고, 그가 말년 선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응원하지 못했다. 앞날이 막막했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친구 오빠와 동생 친구 사이로.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6~7년이 지나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오빠는 결혼했다. 웃긴 건 그 예식장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랑 동생의 절친으로서 도저히 빠질 수가 없었다. 사랑스러운 내 친구들은 신랑과 인사하는 내 모습을 찍어 미니홈피에 올렸다(잔인한 것들!). 현재 그 사진은 내 컴퓨터 D드라이브 '미니홈피 사진' 폴더에 저장돼 있다. 사진 속 나는 숀 펜 같다. 마돈나와 걸어가다 파파라치에게 달려들던 젊은 날의 숀 펜 말이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미니홈피 감성 대방출로 풀렸을까? 이게 다 012-483-9013 때문이다. 무슨 번호냐고? 백이진 삐삐 번호!



사진/ 남주혁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이해하고 싶은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