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하는 걸로?
- 나 결혼하려고.
A가 닭발을 뜯다 말고 말했다.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선언 같기도 했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선택의 문제지만, 조금 난데없는 느낌이 들었다. 왜 갑자기?
- 친구가 결혼한대.
- 그래... 서?
- 너무 놀랍더라고. 결혼 안 해도 잘 살 친군데.
A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지인들 중 숨겨도 트윙클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단연 '연예인처럼 예쁜' 친구였다. 세상 사람 다 부러워하는 트윙클트윙클한 결혼이라면 모를까, 그렇고 그런 쏘쏘한 결혼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듣기에 심드렁한 사이였다. 흔히 말하는 선남선녀 커플도 아니었고, 콩깍지가 제대로 씐 알콩달콩 닭살 커플도 아니었다. 친구와 어울리지 않는 연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좀 안 되는 연애 끝에 '결별'이 아니라 '결혼'을 선택하다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다.
- 결혼이 꼭, 대단한 게 아닌가 봐.
순간 주춤했다. "그래 날 봐도 그렇잖아?" 자학할지, "그래도 할 땐 대단한 줄 알았다우" 너스레를 떨지.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나 들으라고 한 말도 아닌데, 자격지심은! 아니 그래서, 정말 결혼을 하겠다고?
- 응. 이번 생에 포기했었는데, 하려고!
- 와우.
- 결혼은 대체 '누구랑' 하는 거니?
Y가 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좀 전에 결혼정보회사에서 받은 남성들의 프로필을 넘겨 보면서, 언제까지 이 어색한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해야 하는지 염증이 난다고 했다. 직전까지 곱창을 흡입하던 나와 C는 눈치껏 젓가락질을 멈추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 이효리 말이 정답이야.
- ?
- 그 놈이, 그 놈이다! 이만한 진리가 없어.
언젠가 방송에 출연한 이효리가 기혼자로서 깨달은 결혼의 진리였다. "그 놈이 그 놈이다, 그 여자가 그 여자다. 그걸 알면 결혼해서 쭉 사는데, 새로운 사람한테 기대하면 문제가 생긴다." 결혼을 '선택'하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공감하고 또 공감하는 말.
기대한 말이 아닌데, 표정으로 Y가 C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
- ?
- 이 남자는 내 친구의 남편이다.
짝, 짝, 짝! 나는 감동의 의미로 박수를 세 번 쳤다. 아닌 게 아니라 Y는 친구들의, 그러니까 우리들의 남편에게 몹시 관대했다. 같이 욕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지혜로운 대처이기도 했으나, 본인이 만나는 남자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너그러움'이 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오늘도 기혼 친구들은 비혼 친구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우리에게 결혼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전 한 기혼 선배에게 들은 조언이 떠올랐다. 그날 "다녀오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주의지만, 결혼하기가 세상 제일 어렵다는 한 후배가 선배를 붙들고 '배우자 상담'을 했다.
- 막상 결혼하려고 보면 맘에 안 드는 구석이 꼭 한두 가지 있어.
- 한두 개가 맘에 걸려서 결혼을 못 하겠다? 흠...
선배가 말을 고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물어본 후배도, 옆에서 듣고 있던 (당시 비혼이던) 나도 점집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것처럼 초조했다. 뭐지, 이 긴장감은?
- 결혼은 한 가지만 보고 하는 거야.
흔히 말하는 '배우자 이상형' 10가지 조건 중 한두 개만 포기하려는 태도로는 결혼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깨우침'을 기다리던 후배는 '홀랑 깨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눈 감고 하라는 말이 아냐.
네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그걸 채워주는 상대랑 하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