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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Sep 12. 2023

[나만의 가나다]

마취, 맛, 많다, 멍, 물

[마취]

3주에 한 번씩 맑음이와 성형외과에 간다.


성형외과에 가기 1시간 전 병원에서 준 마취 크림을 맑음이 입술에 듬뿍 바른다.


크림을 바른 부위를 랩으로 씌운 뒤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작은 아이스팩을 입에 문다.


입술 안쪽의 감각을 둔하게 하기 위해.


처음 받은 아이스팩이 다 녹고 두 번째 아이스팩이 다 녹을 무렵 레이저 시술이 시작된다.


따끔따끔따끔


시술이 다 끝난 뒤


맑음이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는다.


[맛]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맛없는 음식을 찾기 어렵다.


아이들도 내 입맛을 인정했다.


“엄마한테 맛없는 게 뭐예요?”


“글쎄다.”


예민하지 않은 입맛 덕분에 누군가에게 맛집을 추천해주지 못한다는 건 좀 그렇다.


[많다]


내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깨꿍이: 엄마 저 음악 들을래요.


엄마: 우리 그럼 1개만 듣자.


깨꿍이: 네.


(깨꿍이는 VIBE 앱을 열고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본다. 검색어를 넣을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뮤직비디오를 찾아서 보는지 모르겠다.)


깨꿍이: 엄마 2개도 많지 않아요.


엄마: 응?


깨꿍이: 엄마 2개도 많지 않으니까 2개만... 2개만...


엄마: 그럼 딱 2개만 보는 거야.


음악이 2개 끝나자 깨꿍이는 약속대로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준다.


[멍]


깨꿍이 네발자전거를 끌다 넘어졌다.


내 무릎에 찰과상과 멍이 생겼다.


매일 상처에 드레싱하며 상처 근처에 있는 멍의 상태를 관찰한다.


처음엔 색이 더 진해지더니 보라색, 노란색으로 바뀌어간다.


상처가 나을 때쯤 멍도 사라져 있겠지.


그나저나 깨꿍이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물]


매일 일어나자마자


물로 입을 헹군다.


밤새 입안에 고인 것들을 물로 씻어 낸다.


그러고 나서


물을 한 컵 마신다.


밤새 내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아래로 흘려보낸다.


씻어 내고 흘려보내는 행위만으로 건강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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