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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e Aug 04. 2022

스트릿아트의 어원과 시작

동시대 미술읽기

거리뿐 아니라 현대미술의 씬으로까지 편입해 주류 미술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작품’이 때로는 ‘범죄’가 되기도 하는 그래피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여기에서는 그래피티의 어원적 의미와 발생그리고 변모를 다뤄볼까 합니




그래피티(graffiti)

        도시의 건물, 지하철역, 골목 등에 스프레이나 페인트로 그려진 문자 혹은 그림 등을 ‘그래피티(graffiti)’라고 부른다. 그래피티는 하나로 규정되지 못하는 다양한 성격 때문에 ‘거리 예술(street art)’, ‘도시 예술(urban art), 스프레이 아트(spray art)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근본적으로는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피티(graffiti)는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이태리어 graffito의 복수형으로, ‘기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graphein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무엇인가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 있어 고대 동굴의 벽화(그림1)부터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다양하게 문화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늘날 그래피티는 건물, 지하철역 등에 사회비판이나 불평등을 주제로 저항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행위였기 때문에 제도권에 불편함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공공장소나 타인의 재산을 캔버스 삼아 몰래 작업하는 이 행위는 정당하지 못했다(그림2). 때문에 작품 보존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법 단속 대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였고, 아직까지도 이것이 불법행위인지 예술행위인지에 대한 논쟁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림1]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들소 그림 © 픽사베이
[그림2] 그래피티 되어 있는 거리의 벽 © 픽사베이



불법적인 낙서와 부정적인 시선

        오늘날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필라델피아에서 콘브레드(Cornbread)와 쿨얼(Cool Earl)과 같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름과 메시지를 거리 벽에 불법적으로 남기는 ‘태깅(tagging)’을 반복하며 시작되어(그림3), 1970년대 뉴욕의 악명 높았던 우범지역 중 하나인 브롱스 지역에서 본격화되었다. 당시 브롱스 지역은 건물 일부와 잔해들이 가득한 빈민가로 대부분 흑인들이 거주했다. 폐허가 되어 문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뉴욕의 빈민가에서 자란 아이들의 낙서, 흔적이 그래피티라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솔직하고, 거침없고, 격렬하게 그들의 삶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사회적 불만과 억압에 대한 저항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그림4). 흑인들에게 1960-70년대는 인권운동가이자 목사였던 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이 주축이었던 ‘흑인민권운동’과 1964년 제정된 흑인과 여성에 대한 주요 차별을 불법화한 ‘시민적 권리에 관한 법률(Civil Rights Act of 1964)’ 등으로 권리에 대한 의식이 더 명료해지던 시기였다. 이들은 사회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리의 벽, 지하철역, 터널, 전동차, 경기장, 사유 공간 등 장소 불문하고 그래피티라는 행위를 통해 전달했고, 이 때문에 그래피티는 사회적으로도 큰 도시문제였다. 게다가 이것이 범죄율과도 관련 있다는 보고가 발표되며 그래피티는 더욱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림3] 콘브레드와 쿨얼의 그래피티 태그 © 픽사베이
[그림4] 뉴욕 브롱스 거리의 벽 © 픽사베이


힙합 문화와 함께

        이와 함께 브롱스 거리에서 등장한 것은 힙합(Hip Hop) 문화이다. 80년대 파티에서는 DJ가 음악을 선곡하여 디제잉(DJing)하면, MC는 랩을 읊조리는 엠씽(MCing)을 하고, 비보이는 브레이크 리듬에 맞춰 브레이킹(Breaking)을 하며, 이에 맞추어 암호화한 자신의 이름이나 특정 메시지를 스프레이 캔을 흔들어 뿌리며 그림으로 남기는 그래피티 라이팅(Graffiti writing)을 하였다. 이렇게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힙합 문화를 만들었으며, 당시 젊은이들 중심으로 그 파급력은 대단했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중요한 서브 문화이자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공공 미술운동으로의 변모

        초기 그래피티는 자신을 서명을 빠르게 남기는 태그(tag)’ 양식으로 벽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데 만족했지만(그림5), 이후 과시적인 특성의 스로위(throwie)’ 혹은 스로업(throw-up)’ 등으로 양식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며 뉴욕 지하철을 점령하기 시작했다(그림6, 7). 1970년대 당시 뉴욕 지하철의 치안은 매우 불안했고, 지하철은 캔버스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과 세상을 향한 메시지들로 빼곡히 덮여 나갔다. 문자의 크기는 더욱 커졌고, 다채로운 컬러와 입체감을 부여하는 등 독창적인 형태의 구성을 시도했다. 얼마 가지 않아 뉴욕시의 강력한 단속으로 그들은 지하철에서는 밀려났지만, 도시의 담벼락, 빈 건물 등으로 이동하여 작업은 계속하였다. 더욱 넓어진 도화지에서 그들은 좀 더 자유로웠다. 도심 한복판에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일 수 있는 그들은 문자에서 벗어나 로고(logo)’양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이를 통해 문자 위주에서 추상적이고 좀 더 함축적이며 풍부한 메시지를 함유할 수 있었다. 이러면서 대중과의 소통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는데 인종차별 반대, 전쟁에 대한 공포 등 당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며 공공미술적 성격을 보이기 시작했다(그림8).

        미술사학자 애너 바츠와베크(Anna Waclawek)는 “불법적인 낙서로 시작한 그래피티와 거리미술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미술운동이자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림5] 비교적 간단한 형식의 그래피티 - 태그 © 픽사베이
[그림6] 스로위 형식의 그래피티가 되어 있는 70년대 뉴욕의 지하철 © 픽사베이
[그림7] 70-80년대 뉴욕의 지하철 © 픽사베이
[그림8] 그래피티의 메카로 유명했던 뉴욕시 ‘5Pointz’ 건물 © 뉴욕데일리뉴스


예술활동으로의 평가

        뉴욕에서 호황기를 맞이한 그래피티는 사회문제라는 인식과 함께 새로운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기존의 제도권 안의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형식과 태도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일부 갤러리들은 그래피티의 예술성을 상업예술의 테두리 안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들을 했다. 이 중에서도 키스해링(Keith Haring, 1958-1990)과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kia, 1960-1988)는 그래피티를 현대미술 씬(scean)으로 이동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거리의 미술이 우리 시대를 잘 대변하며, 당시의 문화와 그 형상을 잘 드러내는 새로운 개념의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링은 사물을 아이콘 화하여 그리는 그래피티로 유명했는데 주로 검은 판 위에 흰 분필로 그렸고,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핵전쟁에 대한 공포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다뤘다(그림9). 바스키아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인종주의, 해부학, 죽음 등의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그림10). 이제 더 이상 인종차별, 동성연애 등의 사회문제를 다룬 그래피티를 맹목적으로 반항한다거나 의미 없는 행동들로 치부하여 제도권 밖의 의미 없는 낙서 중의 하나로 마냥 외면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림9] 지하철 검은 판 위에 흰 분필로 그림 그리고 있는 키스해링과 그의 캔버스가 된 뉴욕의 벽


[그림10] (왼)세이모 시절의 바스키아 © basquiat.com (오)소더비 경매에서 1억1050만달러(약 1247억원)에 낙찰된 바스키아 자화상, 1982 © News1


“나는 예술가로 태어났고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오랫동안, 가능한 많은 사람을 위해, 가능한 많이 그릴 것이다.”
-키스해링-



참고서적: 그라피티와 거리미술, 애너 바츠와베크 지음, 이정연 옮김, 시공사, 2015.

 



스트릿아트 아티스트 : 셰퍼드 페어리 / 퓨어 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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