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주차장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는 자전거가 한 대 있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정말 타고 싶어서 재작년에 장만한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를 처음 구입했을 때에는 매주 집 근처 하천변에 마련된 자전거 도로에서 라이딩을 했습니다. 걸을 때에는 느끼지 못하는 자전거가 주는 속도감과 주변 풍경들은 해방감과 상쾌함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에 대한 정보들을 찾게 되었고, 자전거 애플리케이션을 핸드폰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라이딩 시의 내 평균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오늘은 총 몇 km를 주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플리케이션을 깔자 라이딩을 하러 나갈 때마다 내 평균 속도와 총 주행 거리를 수시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지난번보다 빠르게 타야지.', '오늘은 지난번보다 멀리 가야지.'라는 생각이 라이딩을 하는 중에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고,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의 해방감과 상쾌함은 어느새 속도와 거리에서 오는 구속과 집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자전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주행시간, 주행거리, 평균속도, 칼로리 등 라이딩의 다양한 정보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는 총 몇 걸음을 걸으셨나요? 운동은 몇 분을 하셨는지요? 오늘 책은 총 몇 페이지를 읽으셨나요?
제가 이용한 자전거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해서, 만보계나 음식 칼로리를 계산하는 애플리케이션 정도는 핸드폰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다양한 웨어러블(wearable) 기기들을 이용하면 손쉽게 여러 가지 신체 지표들이나 운동량 등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측정하여 수량화함으로써, 스스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활동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을 측정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매일매일 체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 활동을 측정하는 상황에 놓이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해당 활동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활동을 측정하는 것이 수행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측정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합니다.
듀크대 경영학과 교수 조단 엣킨(Jordan Etkin)은 그녀의 2016년 연구에서, 개인의 활동을 측정하는 경우 해당 활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해당 연구에서 실험 참여자들은 걷기를 하거나, 책을 읽는 등의 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걷기 과제의 경우, 한 집단은 만보계를 통해 중간중간 걸음 수를 확인하게 하였고, 다른 집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과제의 경우에도 한 집단은 지금까지 읽은 페이지 수를 고지해주었고, 다른 집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실험 결과, 활동을 측정하는 조건의 사람들의 걸음 수가 그렇지 않은 조건보다 더 많았고, 책을 읽은 양도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해당 활동을 얼마나 흥미 있다고 느꼈는지를 물어보자, 양상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활동을 측정하는 조건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조건의 사람들보다 해당 과제가 흥미롭지 않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측정이 개인의 자발적인 동기와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였습니다. 조단 엣킨은 활동을 측정하는 경우, 사람들은 해당 활동을 일처럼 느끼게 되고, 그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려는 동기가 손상되기 때문에 행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주변의 웨어러블 기기들이나 만보계 등의 사용을 중지해야 하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
사실 우리가 평상시에 측정하는 활동들은 대부분 우리가 흥미 있어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보통 체중 감량을 위해 걸음 수를 측정하고, 운동 시간을 측정합니다. 흥미가 있어서 체중 감량을 하는 경우는 드물겠죠. 원래 흥미가 없던 일을 측정한다고 해서 없던 흥미가 더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측정을 하는 경우 수행이 좋아지기 때문에 측정의 긍정적인 부분만 취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을 하는 경우에 측정이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 때문에, 무작정 측정을 거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원래 재미있어하고, 자발적으로 즐기던 일을 측정하는 것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흥미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원래 독서를 즐기던 사람이 독서량을 매일매일 체크하려고 하거나, 원래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산책한 시간을 측정하려고 한다면, 꼭 측정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래 즐기고 재미있어하던 일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은 상당히 슬픈 일이기 때문이죠.
라이딩을 통해 숫자가 아닌, 새로운 만남과 아름다운 풍경을 남기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을 마치고 나면,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자전거에 설치된 핸드폰 거치대를 떼어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자전거 애플리케이션도 삭제해보려고 합니다. 측정을 통해 라이딩을 더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설치했던 애플리케이션이 오히려 라이딩이 주는 즐거움을 갉아먹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자전거 위에는 원래 얻고자 했던 즐거움이 아니라 속도, 거리, 칼로리를 나타내는 숫자들과 먼지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몇 주간 이어지는 더위와 장마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라이딩을 하는 날, 자전거 위에는 숫자가 아닌 라이딩 자체가 주는 즐거움만이 있길 기대해봅니다.
<참고자료>
Etkin, J. (2016). The hidden cost of personal quantification. Journal of Consumer Research, 42(6), 967-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