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서유 Nov 26. 2022

어느 날 갑자기 팀장을 선고받았다


제가 팀장이요?




2022년의 초여름.


그날 나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고

함께 앉아있던 상사에게서 예고 없이 팀장을 선고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직장이었던 상사가 겸직으로 맡고 있던 팀장 역할을 나에게 물려주겠다는 거였지만.


상사가 다소 무미건조하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넬 때까지도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서 ???? 물음표 가득한 표정이었고 상사가 지친 표정으로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말라고 짜증냈던 기억이 난다. 그걸 무시하고 "제가요...? 이렇게 갑자기요? 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하고 다다다 쏟아내다가  '너는 항상 질문이 너무 많아서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된다'며, 다시 한번 내 단점에 대한 불평을 듣게 됐다.


덕분에 잠시간 머쓱한 미소를 짓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무면허인데 팀장입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내 칭찬을 늘어놓으면 온몸이 간질간질해져서 다 적긴 어렵지만, 그날 그가 팀장 선고를 내린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1)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약간 늘었다는 것.

(그는 내게 물경력에 가깝다고 말했었다.)


2) 리더로서의 가능성이 조금 엿보였다는 것.


3) 이런 성장세를 점프 업시킬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의 내 경력이나 역량은 사내 다른 팀장들에 비하면 부족한 면이 있었기에, 그가 나의 가능성을 믿어줬을 뿐이지 아직 자격은 갖추지 못한 무면허 팀장에 가까웠다.  때문에 존경하던 상사에게 인정받았다는 큰 기쁨과 동시에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함께 차올랐다. 덕분에 짧은 감사의 인사를 하자마자 걱정과 불안을 넘어  거의 자기 불신에 가까운 -나는 못해낼 거라는- 말들이 흘러내렸다. 한번 더 잔소리를 들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1:1 개인면담을 통해 조언과 피드백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사소한 약속인데,  그거 하나에 매달려서 해보겠다고 한거라면 이미 리더 자격이 없는 거였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어른같고 척척 결정하는데이 나는 약간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해서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땐 그렇게 느꼈다.)


어느 날 팀장이 턱 하니 주어졌다고 해서 그게 갑자기 바뀔 순 없었다.  친구들에겐 아직도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절벽에서 날아보라고 퍽하고 밀쳐진 기분이었다고나 할까ㅋㅋ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웠던 무면허 팀장에겐 발을 헛디뎌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심리적 안전망이라도 있어야지 후들거리며 뭐라도 해볼 수 있었다.


아무튼

내가 불안해하건 말건 이제야 너도 리드의 고통스러움을 이해하게 되어 너무 좋다며 낄낄대던 상사는 바로 다음날부터 모든 회의와 리드 업무를 나에게 인수인계했다.  덕분에 점심메뉴나 고민하며 느긋하게 업무를 시작했을 오전시간부터 회의에 불려다녔고, 마우스를 잡고 있는 시간보다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듣는 시간이 더 많아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었다.  익숙하지 않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고 비효율적이라 업무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여기에 한번 더 쐐기를 박듯 새로운 프로젝트 일정까지 발등 위에 떨어졌다.  

이보단 더 열심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할정도로 살인적인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잦았고 밥먹을 시간도 부족해 몇달간 5-6kg은 훌쩍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다행히 상사는, 약속대로 1주일에 한 번씩 1:1로 만나 나의 징징거림을 들으며 내가 어려워하는 문제들에 대한 힌트나 오답노트를 주었다.  그러나 직접 해주진 않았다. "이걸... 제가... 하라고요? 이것도... 제가 하는게 맞아요??"는 내 단골멘트. 매일매일이 챌린지였다. 상사는 내가 정말 헛발질해서 프로젝트가 산으로 굴러갈 것 같을 때에만 무심하게 길을 잡아주곤 또 바람같이 사라지곤 했다.


 고맙긴한데 ...  저 자전거 타겠다고 한 적 없는데요 ...  



                 

원한 적도 없는 자리를 받아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솔직히 그 상황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와 숨 돌리며 되돌아본 올 한해 시행착오들을 통해 몸으로 배운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해온 것과 너무도 다른 업무에다 괜히 어깨까지 무거워지는 팀장이란 자리.  관리자 롤은 실무 할 시간이 줄어든다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디자이너로서 제일 일도 많이 하고, 커리어의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6-7년 차.  실무능력을 더 갈고닦아도 모자랄 이 시점에 관리직을 수락하는 게 정말 좋은 선택일까? 하는 질문을 몇번씩 던졌다.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올 한 해동안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낄 만큼 크게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이건 팀장이라는 애증의 챌린지 덕분이기 때문이다.







막상 쓰고 나면 보잘것없어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기록해 두고 싶단 생각이 들어 한밤중에 이 글을 썼다. 계획에 없던 일일수록 행동력이 좋아지는 타입이라, 문뜩 생각난 브런치 작가 신청까지 해봤는데, 덜컥 통과가 되어서 오히려 당황했다.  내 글...발행해도 괜찮은 거겠지?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괜히 혼자 부끄러워하는 자의식과잉러가 여기 있다.  기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써보겠다는 혼자만의 다짐과 함께 이 글을 마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