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끼다 X된 것들에 대하여
어릴적 나는 무언가들을 그렇게나 아꼈다.
어머니와 처음 교환하던 일기장. 아버지가 사주신 전기파장을 콘트롤 하는 장난감, 동생의 배시시 침이 묻은 아기냄새 가제수건 같은 것들... 그 중에서도 최고로 아끼던 것은 아마 '지우개’일것이다.
열 살 때까지 나의 보물상자엔 지우개가 꽤나 많았는데, 세계 각국에서 부모님과 친지들이 모아다 준 것부터 파슬리 모양, 적어도 열 가지는 될 곰돌이 모양. 아, 일본에 살던 친척동생이 보내준 새우튀김 모양도 있었다. 이 것들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당시에는 <지우개 따먹기>라는 놀이가 그리도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모은 콜렉션인데 단지 한 번의 어부바로 이걸 가져가버린다고??? 그 사행성에 기겁한 나는 우정은 잃을 지언정 지우개 따먹기 놀이엔 동참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우개들은 내 보석 모양 플라스틱 보물함에서 안전히 지켜졌다. 한 달에 한 번은 잘 있나도 확인하고, 괜시리 이미 단단히 씌워진 비닐껍질도 한번 더 점검하곤 했다.
아마 이쯤되면 이 이야기의 슬픈 결말을 짐작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그렇다. 아낀 나머지, 너무 아낀 나머지, 나는 그 보물함을 중학생이 되며 까먹고 말았다. 15세의 쪄죽을 듯한 어느 여름날, 나는 기어코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 방을 대 청소하다 먼지구댕이 침대 아래에서 지우개 보물함을 발견했다. 뭔지도 기억이 안났고 어떻게 여는지 그 메카니즘도 까먹어 한참을 붙들고 실랑이를 한 끝에 뚜껑을 열었을 때!!
아뿔싸... 내가 소홀 한 사이 나의 사랑스러운 지우개들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그로테스크하게 한 몸으로 엉겨 붙어 녹아있었다.
'아...안돼...'
새우튀김은 새우죽이 되어버렸고, 곰은 이미 초콜렛으로 변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지우개 따먹기를 할 걸, 아니, 내 지우개 컬렉션을 볼 때마다 부러워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 어머니가 안계시다던 친구에게 차라리 몇 개 꺼내 줄걸. 네 지우개 너무 예쁘다 바꾸자하던 친구 눈앞에서 매몰차게 뚜껑을 닫아버리지나 말 걸,
이럴 걸. 저럴 걸. 이렇게 아끼다가 똥 되는건 어느 새 너무나 일상이 되어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선물해준, 뜯기도 아까워 두 달을 묵힌 모짜렐라 치즈는 이미 블루치즈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선물할 거라고 산 멜로디카드는...몇 년이 지난 후 열어보니 Happy Birthday song 이 아닌 기괴한 할로윈 송으로 변주되어 지직거렸다.
결국, 내가 아낀다고 아껴왔던 방식은 진정의 아낌이 아니었다. 외려 이건 방치, 방관? 우선은 놔 두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 오만방자함이 이런 변질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나는 자주
미안하다는 말을 삼켰고
보고싶다는 말을 숨겼다. 사람이 어디 가나. 물건에게 하듯 사람에게도 똑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 그립다는 말도 모두 아꼈다.
한 번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이 말 들은
이제 쓸 대상도 없어지니 공연히 혼자있을때에나
어색하게 한번씩 허공에 던져진다.
사랑해
무지하게 어색하고 상그럽다.
미안하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사랑했다
아끼지 말자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