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즈음에

너와 함께한 시간의 기록 1

by 신새눈




너의 눈을 들여다본다. 너는 영롱한 눈으로, 깊지만 부드러운 눈길로 나를 본다. 나도 사랑을 한껏 담아 눈으로 하트빔을 쏘는 상상을 하며 너를 바라본다. 그 순간 이 세계에는 우리 둘만이 존재한다. 너는 점점 커지고 나는 사라진다.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네가 된다.


너는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공기입자가 탄산처럼 톡톡 터져 '행복'이라는 향기를 내뿜는 것 같고, 세상의 모든 꽃들이 빛을 머금고 일제히 피어나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작은 존재가 건네는 순진하고 순수하고 맑은 미소가 나의 영혼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 울림은 매번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초연하게 만든다.


너의 눈에 비친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검고 짙은 너의 둥근 우주로 빨려 들어간다. 그 속에 펼쳐진 황홀한 심연 속을 유영한다. 약간은 몽롱한 기분으로 누군가 나를 이토록 사랑스러운 눈길로 오랫동안 바라봐준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엄마도 나를 이렇게 바라봤을까, 엄마도 나의 눈동자 속에서 우주를 경험했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쉬 소리를 내면서 너의 가슴을 살며시 토닥인다. 너는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닫으며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잠 속으로 스르륵 빠져들어간다. 이따금씩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너와 나의 우주를 가르는 촘촘하고 긴 너의 속눈썹은 나를 안도하게 만든다. 너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평화롭다는 말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스스로를 엄마라 칭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 너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돌본다. 네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너의 기분이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하루를 살아간다.


너는 커튼의 물결치는 주름 또는 하얀 벽과 천장에 드리운 음영과 그림자를 좋아한다. 너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로 고개를 꼿꼿하게 들거나, 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들을 응시한다. 그때의 너는 처음 보는 세상의 거대함(광대함?)에 압도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미스터리한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너는 또한 동그라미가 중첩된 그림이나 둥근 버튼이 둥글게 늘어선 모빌의 몸체,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진 카드모빌을 좋아한다. 그것들을 보는 너의 눈에는 광채가 돈다. 너는 모빌 아래에 누워 그것들이 마치 너에게 말이라도 걸어오는 양 까르르 웃는다. 그 외에도 너는 나비모양의 가벼운 공갈젖꼭지를, 몸을 담그는 따뜻한 물을, 얼굴에 바르는 로션의 촉감 등을 좋아한다.


'너의 울음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가끔 의심하고 잊기도 하는 이 명제는 너를 울리고 스스로를 질책할 때마다 네가 아직 어리지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가끔 몸이 너무 지치고 아프고 피곤한 날에 너의 울음이 네가 건네는 말로 들리지 않고 그저 성가시고 귀찮은 투정으로 들렸다. 조리원을 나온 이후로 연달아 3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고 점점 자라나면서 무거워지는 너를 안아 들 때마다 뼈마디가 아픈 데다가 그 피로가 누적되고 있어서 새벽잠을 유난히 못 잔 날은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그런 날 네가 칭얼거리면 그냥 잠투정이겠지, 하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되려 눈을 꾹 감고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막상 일어나 보면 토사물이 얼굴에 흘러있거나, 소변에 대변까지 가득 찬 기저귀가 새서 옷과 이불이 젖어있는 등 울음의 명확한 이유를 마주하곤 했다. 그때마다 '너는 이유 없이 울지 않는 아가였지.' 하고 깨달으며, 맹렬하게 울지 않고 조금 칭얼거리다 잠이 들기를 반복하던 너의 순한 기질에 마음이 아프고 한 순간 너를 방치한 나의 게으름에 죄책감이 들었다. 잠이나 피로가 확 달아난 채로 뒤처리를 하면서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엄마라는 역할의 무게를 느꼈다. 이렇게 부족하고 약한 인간인 나에게 너는 너의 온 인생을 맡기고 있는 거겠지, 너에게 엄마는 나밖에 없구나, 생각하면 내부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샘솟았다. 콸콸 쏟아지는 폭포 같은 에너지라기보다 한 방울 한 방울 솟아나는 맑고 순도 높은 샘물 같은 에너지였다. 건 그동안 내게 없던 생의 의지 같은 거였다.






처음에 빨간 얼굴로 꼬물거리던 너는 존본능만 남아있는 원시적인 지적생명체 같기도 하고 강아지 같기도 하 남편과 나를 이어주는 운명의 끈 같기도 하고 가끔은 외계생명체 같기도 더랬다. 새벽에 꾸벅꾸벅 졸면서 분유를 먹이다 문득 네가 나의 어린 시절 얼굴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적도 있다. 너는, 가끔 무한한 신뢰로, 가끔 무한한 행복으로, 무한한 안정감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눈을 하고서 나를 는 너는, 내게 대체불가능한 하나의 우주다. 나는 분유냄새가 나는 너를 안고서 단풍잎 같은 너의 손을 조물 거리며 달콤하고 말랑한 행복을 맛본다.


경이롭고 신비한 생명의 잉태와 출산의 경험, 극한의 고통 이후 새롭게 열리는 충만한 생활, 한 인간의 탄생 이후 매 순간을 지켜보고 관여하고, 생의 처음부터 함께 한다는 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다. 한 번도 디뎌보지 못한 미지의, 밟아보지 못한 설원 같은 하루들. 눈처럼 금세 사라져 가는 이 순간들이 너무 찬란하고 소중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시험관 시술을 결정하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기를 낳고 보니 내가 일생껏 원했던 단 한 가지가 아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나는 네가 아닌 어떤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너를 만나지 않는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되어 있었을까 하고. 진부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같은 행복은 느껴보지 못했을 거라는 것.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이왕이면 나와 함께 행복했으면,
또 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살아갔으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