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자판기 Jan 16. 2024

여섯,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

하지만 일상다반사

어릴 때는 하루 하루가 참 지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얄궂게도 참 시간이 빨리 간다. 루틴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빠르게 간다고 느끼는 것일게다. 내 뇌에 새로운 일이 새겨질 기회가 적다보니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가 계속될 때에는 뇌의 최적화를 위해 비슷한 일과는 그냥 적당히 뇌에서 한 덩어리로 갈무리 되는 탓인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렇듯 그냥 잔잔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이상하게도 뭔가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어리가 빽빽하도록 일을 해야 뿌듯한 하루를 살아낸 듯 한데 그냥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하루하루는 상대적으로 하찮게 여겨진다. 


그래서 평범한 하루를 좀 특별하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상이 하찮게 여겨질 때 나는 의식적으로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하나 하나 모든 일을 새롭게 보고 더 자세히 바라보는 식으로 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맘 먹은 순간 평범한 하루도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는 일이 자주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아침에 늦잠자는 딸을 깨우는 평범한 순간도 조금 느리게 꼼꼼히 관찰하면서 그 과정을 낯설게 보면서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딸아이의 잠투정도 짜증이 아니라 귀여운 투정으로 느끼는 매직이 나타난다. 이 평범한 순간이 마치 영화 속 평화롭고 포근한 따뜻한 풍경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나는 꽤 온화한 미소를 띈 엄마모습인 것 같다. 


나는 이 경험을 그냥 '낯설게 보기'라고 이름 붙이고 때때로 내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낄 때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보려고 노력한다. 거창하고 좀 어렵게 이야기 하면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말하는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일종의 명상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경험에 집중하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내 삶에 나는 이런 식으로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문득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고 하찮은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이 시간이 내게 주어진 평화로운 순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나는 그런 순간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타자를 치는 손가락의 감촉과 타닥타닥 나는 소리에 집중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스쳐지나가는 생각에도 집중해 본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조명과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도 집중해본다. 써놓은 글을 되짚으며 홀짝이는 커피향도 음미해본다. 


나는 감사하게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감사함을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 꾸준함이 없어도 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