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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판기 Jan 04. 2024

다섯. 꾸준함이 없어도 감사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나는 꾸준함이 없다. 인내심도 없다.

쉽게 시작하고 쉽게 싫증을 낸다. 그렇다고 성실하지 않느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관심사에 꽂힐 때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다 보니 한 우물을 파지 못했을 뿐. 그러니까 성실하지 않다고 하면 약간 억울한 면이 있다.


혼자 끄적거리던 글을 브런치에 써보기로 마음먹고 가입을 하려는데 내 이력을 적다가 생각이 많아졌다. 대학은 전공을 달리해서 두 번 졸업했고, 대학원도 마쳤다. 직업도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온라인광고기획자가 되었다가 창업을 해서 작은 회사의 대표였다가 다시 취업을 해서 UX기획자로 일했다가 전업주부였다가 대학원생이었다가 현재는 임상심리사이자 미술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I형 인간의 이력서 치고는 꽤나 복잡다단하다. 내 이력서가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꾸준함보다는 내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꾸준함을 미덕으로 삼는 누군가는 못마땅할지도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봤을 때 꽤나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적은 없다. 


청소년들을 상담하다 보면 많은 청소년들이 꿈이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세상은 꿈이 없으면 인생에서 실패할 것처럼 여기는 듯도 하다. 10대 아이들의 꿈이 없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아직 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는데 꿈은 언감생심이다. 자기 계발 콘텐츠가 넘쳐나는 걸 보면 나만 빼고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조급한 마음이 들수록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꿈은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니. 


무엇인가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시기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꾸준함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니 이대로 족하다. 


그러니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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