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살던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서울에 즐비한 불법건축물들, 그리고 그 중 한 빌라 - 그 중에 한 동 -그 중 한 세대에 살고 있던 나에게 어떤 파장이 닿았기 때문인데, 그 파장의 꼬투리를 잡아보자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서울시장은 최근 불법건축물 이행강제금을 대폭 올렸는데 이 생각의 시작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해밀톤호텔의 불법증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었고, 대폭 오른 이행강제금에 결국 불법건축물 과태료를 내고 있던 건물주들이 불법건축물을 합법건축물로 다시 공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503호의 내가 곧 퇴거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아주 느슨하게 하지만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다. 찰나 누군가가 확 하고 당겨버리면 팽팽하게 -원래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명확한 연쇄를 내어 보이는 것이다.
하여튼 그런 연쇄의 마지막 위치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나는 그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당최 그 전략이랄게 무엇인지 알지 못 한다. (물론 내가 연쇄의 마지막에 위치한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내가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손에 잡히는 말들로 이야기 해보자면 불확실한 것들에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인 것 같다. 어떤 연쇄의 끝인지, 그 연쇄가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시작의 이유는 무엇인지 그 무엇도 명확하게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핵심이다.
어쨌든 모든 일은 0과 1에 수렴한다. 결과는 말이다.
나는 대처하거나, 받아들이면 된다.
대처하거나 받아들이면 된다고 썼지만 쓰는 것 만큼 행하는 게 쉽지는 않다. 지난 2주간 끝없는 매물 탐색과 발품팔기. 네이버 부동산 UI에 계속 짜증이 났다. 서울에 거의 10년 살았고 자취를 7년째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신경을 많이 쓴 적이 없었다. 전세사기. 중개자격이 없는 공인중개사에게 당한 사기라든가 깡통전세라든가 빌라왕이라든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자살하는 한 다리 건너 사람들이 귀에 자꾸 꽂히고 눈을 감으면 다음 자살하는 사람이 나일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서 받을 수 있는 만큼의 스트레스는 다 받은 것 같다. 심지어 아직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전세사기 때문에 최근 최초로 월세 선호도가 전세 선호도를 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월세는 오를대로 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살고 싶은 집 같은 것을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중 몇 가지로 좁혀지는 내가 해도 되는 것, 그 사이 위험 부담이 비교적 작은 것들 을 함께 고려하다 보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인지하다보면 그냥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겹고 싫어진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이거다. 그래도 나는 이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숲들 사이에서 발 붙이고 그래도 숨 쉬고 그래도 친구들 만나고 그래도 회사에 가고 그래도 남자친구랑 만나야 한다는 것. 하여튼 무조건 집을 찾아내야 한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냥 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겨워져도 져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