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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Dec 05. 2019

복직 단상

복직한 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 

1년 4개월은 분명 짧은 기간이 아닌데 12월에 복직한 탓에 

작년에 휴직에 들어가 올해 복직한 것이 되자 체감기간이 확 줄어들었다.

복직하자마자 내가 속한 조직에서 가장 높은 분의 방문 일정이 바로 코 앞이라고 하여 적응이고 뭐고 할 새도 없이 급하게 실무에 뛰어들었다. 

지난 휴직기간 동안 엑셀을 실행시켜본 것이 손으로 꼽는데, 복직 첫날부터 무수히 많은 숫자를 보고 함수를 써서 표를 짰다.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알고 있던 업무 내용과 바뀐 것도 있고, 사내 시스템 접속 권한이 모두 사라져 다시 신청하느라 좀 헤맸지만 어떻게든 시간 내에 업무를 하긴 했다. 뇌는 아직 멍한 상태인 것 같은데 놀랍게도 손이 기억해내고는 일을 했다.

중요한 보고라고 하니 혹여나 실수할까 봐 모니터를 보고 또 봐서 어깨가 아프고 눈이 침침했다. 

복직했으니 적응 좀 하겠습니다, 를 핑계로 좀 쉬엄쉬엄 업무 감을 깨우려는 계획이었는데.

회사 메신저로 복직했다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 오는 선후배, 동기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상황이라고 했더니 어떤 선배 왈, "일을 몰고 다니는 건 여전하네". 


그랬다. 입사 때부터 유독 일이 많은 부서에 배치되곤 했다.

하지만 사원~대리 시절 바쁜 부서에서 쟁쟁한 선배들에게 일을 배운 것은 두고두고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배웠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꾸역꾸역 일을 해내면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주변의 기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업무 경험치를 많이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회사에 내 시간을 올인할 수 없는 시기가 되니 그 시기 익혀둔 스킬들이 업무 속도를 높여줘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출근길에 스마트폰 뉴스를 검색하다 모 대기업의 임원인사 중 30대 여자 상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85년 생, 나와 비슷한 또래인데 미국 유명한 대학 석사까지 했고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달았다고 했다.

우와, 이런 사람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겠지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리는데 웬걸, 아이도 있고 회사 입사 후 석사 과정과 아이 육아를 위해 3년 정도 휴직을 거쳤다고. 물론 개인의 역량이 뛰어나니까 그런 공백이 있어도 초고속 승진을 했겠지만 같은 워킹맘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내가 복직한 팀의 팀장님도 역시 워킹맘이다.

둘째 자녀가 올해 수능을 치렀다고 하니 아이들 입시까지 모두 끝내신 셈인데, 다른 팀원을 통해 들으니 아이들 공부를 직접 챙기시고 입시 전략을 짜서 수시모집으로 명문대를 보내셨다고 한다. 

평소 업무도 아주 꼼꼼하게 하시고 일단 매사에 여유가 넘치신다.

아마 진짜 여유가 넘쳐서 그렇다기보다 다년간 연습을 하신 듯한 모습이다.

상사에게 업무를 설명할 때, 팀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실 때도 여유 있게,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설명을 하시는 모습을 며칠간 지켜보면서 나도 팀장님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 출근을 해보니 아침에 아이들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아이 둘을 각기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여유보다는 '빨리빨리'가 습관처럼 붙었는데 나도 의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말도 천천히 하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당분간은 쉬는 일 없이 달려가는 일만 남았다.

호흡을 길게, 시야는 멀리.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여유 있는 뜀을 시작해야겠다. 

그래서 1년 반 만에 회사에 출근해서 PC 앞에 앉아있는 소감은,

음... 마치 지난주에도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무래도 나는 이렇게 일 할 팔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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