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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an 02. 2020

아이를 키울수록 불타오르는 학습욕구

육아서에 안나오는 분야도 궁금해

복직하고 용케 잘 버틴다고 생각했더니 결국 12월의 마지막 주말부터 둘째가 아프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설사를 시작으로 고열이 났다. 
이미 토요일 진료가 끝난 시간이었던지라 일요일도 하는 병원에 아침 일찍 가기로 하고, 일단 흰 죽을 끓여서 먹였다. 하지만 설사는 멈추지 않았고 힘들어 축 쳐져있는 아이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불현듯 지난여름에 비슷한 증세로 병원에 갔을 때 받아둔 약이 생각났다. 약국에서 조제된 약은 아니고 완제품으로 밀봉되어 판매되는 '하이드라 섹산'이라는 지사제인데, 의사 선생님이 처방하실 때 약 수급에 뭔가 문제가 있어 프랑스제 비급여 약을 써야 해서 좀 비싸지만 급성 설사에 효과가 좋다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당시 아이들 둘 다 비슷한 증상이라 여유 있게 처방받았었는데, 설사가 멈추면 안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남겨둔 것이 8포 정도 있었다. 
임의로 이 약을 먹여도 될까, 조금 망설여졌다. 
내일 아침 병원에 갈 때까지 기다리자니 밤이 너무 길었다. 인터넷으로 약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처방 증상이 비슷하여 일단 한 포를 먹였다. 다행히 설사는 좀 나아졌고, 다음 날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독감 및 각종 호흡기 질환이 유행인 시즌이므로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진료를 볼 때 먹인 약을 가지고 가서, 아이의 현재 증상을 이야기하고 지난번 비슷한 증세 때 처방받았던 약이 남아있어 마음이 급해서 이 약을 먹였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그 약이 남아있으면 별도 처방하지 않을 테니 정상변을 볼 때까지 계속 먹이라고 했고, 위장약과 유산균 등을 추가로 처방해주었다. 혹여 약을 잘 못 먹였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증상에 맞는 약이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끔은 의학을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학창 시절 성적이 의대를 갈 만큼 좋지도 못했을뿐더러 피가 나오는 영화는 쳐다도 못 보는 내가 이제와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그냥 의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서 병원에 갈 때까지 두려움에 떠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는 목적에서다. 
아이가 아프면 대부분 인터넷 맘 카페에 증상을 검색해보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래도 맘 카페에 가면 수십만의 표본이 있으니, 우리 아이만 이 증상으로 아픈 게 아니라는 것만 해도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맘 카페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여러 의견이 혼재되어 있고, 터무니없는 민간요법도 많이 있어서 신뢰를 하지 않은지 오래다. (예를 들면, 열이 나는 아이에게 물에 젖은 양말을 신기세요 같은 - 고열이 나면 오히려 손발이 차가워져서 물수건 찜질도 손발의 온도조절은 소용이 없는데...) 
맘 카페에 신뢰를 잃은 나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쓴 책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하정훈 선생님의 책 <삐뽀삐뽀 119>를 첫째가 태어났을 때부터 정말 많이 읽었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맨 뒷장의 색인에서 증상을 찾아 밑줄을 그어가며 체크해보곤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부모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게 집필된 책이라 내가 정말로 궁금한 병의 원인과 증상, 처방하는 약, 호전 시 경과 등에 대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는다. 혹시 이런 분야에 대해 교양서처럼 다룬 의학서적이 있나 찾아보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전문 의학서적이 대부분이다. 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은 몇 권 보이지만 <삐뽀삐뽀 119> 수준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의학은 정말 '전문인'의 영역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성급한 판단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교양 의학이라는 분야가 발달하지 않은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증상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수많은 임상을 경험한 의사의 영역이고, 당연히 존중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병원에 가서 진단과 처방을 받을 때 어떤 증상 때문에 해당 진단이 내려졌는지, 그리고 어떨 때 어떤 약을, 어떤 효능 때문에 처방받는지에 대한 일반인 수준에서의 궁금증인데 이런 부분을 공부하고 싶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의학뿐 아니라 청소년 상담이나 심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 
나도 청소년 시기를 지나왔지만 스스로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일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남자아이들만 키우다 보니, 좋은 부모 자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물학적 성의 청소년 시기의 특징에 대해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알고 겪으면 좀 낫지 않을까. 관련해서 알아보니 방송통신대학교에 청소년학 전공이 개설되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저렴한 비용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 수업이 촘촘한 커리큘럼으로 다방면의 지식을 쌓기에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교육에도 신경 써야겠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공부가 진짜라더니, 정말로 실생활에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학문으로 깊이 파고들고 싶어 진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둘째가 조금 더 크고 나면 여러 가지 공부를 도전해 볼 생각이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나도 이렇게 한 뼘씩 자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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