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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d Jul 24. 2023

그날의 생존전략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생각할 때, 꼭 포함되는 것이 하나 있다.

타인의 행동을 보며 작은 신호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수집한 뒤 해석해 내는 이른바, 사회적 눈치가 빠른 편이다.


나는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훌륭한 무기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는데.. 어디서 그러더라.

사회적 약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라고.

강자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발달하는 능력이라고.

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강한 자존심이 부정하라고 발버둥 치는데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다.

나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매일같이 강자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우리 집에 항시 거주하며 최고의 권력을 휘두루는 사람, 엄마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친엄마가 아니라 새엄마라 그런지, 아니면 그분 성격이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그분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힌트는, 우리를 만나기 전에 본인의 배를 가르고 낳은 자녀가 둘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인 애를 두고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키우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않겠나 싶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엄마 또한 사회적 지능이 잘 발달된 사람이었다.

이유 중 하나는, 아빠 앞에서 우리를 혼내는 일은 없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공포심을 유발해 입막음을 아주 잘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누나와 나를 동시에 혼내는 일은 없었다는 것.


항상 한 명을 혼낼 때면 다른 한 명에게 잘해줬다.

우리 남매가 합심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 없게 한 놈을 미리 포섭해두는 것이다.

그 전략은 아주 훌륭히 작동했다.

누나는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간신배 마냥 누나보다 덜 혼나기 위해 기를 썼으니 말이다.


우리가 혼나는 데에는 별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본인 스트레스를 풀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하루라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병에 걸린 걸까.

어쨌든 나는 매일같이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엄마와 치른 전쟁은 아니다.

그 당시의 전쟁은 누나와 치른 전쟁이었다.

누나만 이긴다면 내 생존권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나 미안)

어떤 수를 써서든 누나가 혼나게 해야 했다.

그것이 내 생존 조건이었다.

내게 날아오는 폭력 레이더를 교묘하게 피하고, 누나 쪽으로 돌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주 작은 힌트로 엄마의 기분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액션을 취해야 했다.

누나보다 한발 빨리 그래야 했다.

나는 그 짓을 12년간 해왔다.

그 짓을 12년간 해왔으니, 눈치만큼은 최연소 블랙벨트 정도 되는 것이다.


지옥 같은 삶이었지만 끝내 살아남으니 무언가 얻는 건 있었다.

하나는 강력한 눈치이고, 다른 하나는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그곳은 야생 혹은 전쟁터였고, 그곳의 룰은 ‘어떻게든 살아남아라’는것 하나 뿐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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