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신청을 한 상황이었고, 부모님도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냐며 적극적으로 여행을 권해주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부모님과 오래 떠나 있게 된 시간이자 첫 유럽 여행이었으며 친구들과의 첫 해외여행, 고등학교에서의 첫 수학여행이 시작되었다.
가기 전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지하 쇼핑 상가에서 보름치 옷을 쇼핑을 해야 했고, 옷과 생필품을 담아 갈 핑크색 캐리어를 텐바이텐에서 구매해야 했으며, 수업 준비물인 스케치북과 연필을 알파 문고에서 구입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디지털카메라도 새로 장만해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할 것 같던 프랑스 여행도 출발 전날은 다가왔다. 우렁찬 인사 한 번과 선생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프랑스 파리 하늘 아래 도착.
파리의 하늘은 이런 색이구나.
외국 여행이 낯설었던 당시의 나는 우리나라와 다른 하늘의 색과 불어로 적힌 간판, 내가 외국인이 되는 경험들이 신기했다.
프랑스는 맥도널드 햄버거도 엄청 크네.
왜 모르는 사람이 감자튀김을 달라고 하지?
저 친구 감자튀김 강탈당했다.
(당시 파리에서는 관광객 대상의 감자튀김 도적질이 흔한 일이었던 것 같다.)
에펠탑 열쇠고리 엄청 많이 판다.
와, 이 나라 사람들은 옷을 벗고 보드를 타네.
모나리자는 사람이 많아서 유명한가.
유명한 그림 같은데, 다리 아파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모네의 정원은 과장해서 그린 게 아니라 정말 이렇게 생겼구먼.
이런 데서 사람이 살면 어떤 기분일까.
미술관 지겹다.
빨리 집에 가서 커피프린스 1호점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신기함이 익숙해지고 박물관, 미술관을 매일같이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집에 가서 그동안 밀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도 사진은 많이 찍어놔야지.
로댕의 조각상도 찰칵.
멋진 건축물도 찰칵.
친구들과도 찰칵.
멋진 테라스도 찰칵.
길가의 돌멩이 찰칵.
보름 동안 눈으로 담은 만큼이나 카메라 셔터를 끊임없이 눌렀다.
“엄마! 우리나라 하늘 왜 이렇게 회색이야?”
드디어 돌아온 대한민국.
하필이면 도착한 날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우중충한 날이었다.
고작 보름 다녀왔으면서 프랑스에 5년은 살다 온 사람 마냥 파리는 어쨌고 저쨌고,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들과 어디를 다녔고 뭐는 맛있더라 누구는 지갑을 잃어버렸더라, 모나리자를 실제로 봤는데 벌거 없더라 등 신기한 경험을 아는체 잘난체를 곁들여 부모님이 내주신 돈으로 갖은 유세는 다 떨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재잘재잘대다 집에 들어오기 무섭게 세탁물 한 바가지와 여행 내내 달고 살았던 디지털카메라는 내팽개치고 한일은 커피프린스 1호점 다시 보기.
옷 정리는 나중에 해도 되니깐, 사진 정리는 천천히 해야지.
이 핑계 저 핑계로 각종 기념엽서, 카메라는 방학 내내 책상 한편에 방치한 채 지냈다.
이제는 프랑스 뽕에서 조금은 빠져나와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즈음에 언니가 물었다.
“나 카메라 필요한데, 이거 다 옮겼지? 지워도 돼?”
어디 옮겼던 것도 같고,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을뿐더러 귀찮은 마음이 커 건성건성 대답했다.
“응-”
그리고 나중에 아주아주 나중에 개학하고 친구들과 다시 수다를 떨며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사진을 찾아보려는 순간, 사진을 어디에 보관했지?
“언니!”
“왜?”
“언니, 사진 다 지웠어?”
“다 지웠지.”
내 컴퓨터, 외장 하드에 없는데, 카메라에도 없으면 어쩌지?
사진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핸드폰으로는 전혀 찍지 않아 내게 남아있는 것은, 숙소에서 친구와 폴라로이드로 찍은 침대 위 장난스러운 한 컷과 의미 없는 색연필 이미지 한 컷이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