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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Jul 17. 2024

part.1 살다 보면 생각보다 감정이 망친 일이 많다

엄마의 수험 생활 이야기








시험이 드디어 끝이 났다.

오기는 오는 걸까 싶었던 날은 진짜로 와버렸고 나는 무사히 그날을 지나 오늘에 있다.


지난 토요일이 시험이었으니

오늘로써 3일이 지나고 4일 차.


몸을 혹사시키며 달려왔기에 아직도 컨디션 회복이 되지 않음에 무척 괴롭지만 힘을 내어 스터디카페로 달려왔다.




시험 시작이 오후여서 오전에도 어김없이 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시험장으로 출발했었다.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앞 뒤에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네.

긴말로 표현하긴 어렵고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래,

묘하다.



시험 전날 나의 마지막 기록이 책상 위에 남아있었다. 온갖 잡생각이 나를 삼키다 못해 증발해 버릴 것처럼 괴로웠다. 생각을 단순화하고 감정의 구렁텅이로 들어가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나의 담담한 마지막 기록.


담담해서 오히려 처절했음이 느껴져 아려오는 느낌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바랐던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었다.

내 글들이 메인을 여러 번 장식하는 꿈같은 날들도 여있었다. 그 순간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나치게 예민한 내가 소소하게 끄적거리는 글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심에 그렇게 감사해하며 더욱 열심히 글을 써보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글과 삶은 생각만큼 조화롭지 못했다.

집에서 그냥 노는(?) 줄로만 보는 시선, 브런치라는 걸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결국은 이런 얘기는 하지 못했다. 아니, 내 솔직한 글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주변 상황의 문제라며 원망했었지만 사실은 어쩌면 내 안에 여러 자아가 싸우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한다.


내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주변을 설득할지도 까마득했고, 설명해야 하는 것도 스스로 납득이 안 되고, 지칠 대로 지쳤었다.

그렇게 나는 글 쓰는 일을 내버려 둔 채로

정말 ‘숨참고 다이브’하는 심정으로 수험 생활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녹록지 않더라.

가성비 따져가며 무료강의 위주로 듣고 최대한 그렇게 아끼면서 드는 서글픈 감정을 지우느라 에너지를 쓰고……


뜬금없이 공부를 시작한다는 걸 부모님께 설득하느라 또 에너지도 엄청나게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아이들 챙겨가며 그 시간들을 보냈다.




시험 석 달 앞두고는 이사 준비한다고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는데, 두 달 정도 남은 시점엔 난데없이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었다.

그 이후로는 침대에 엎드려서 계속 공부했었다. 그래도 내가 이 난해한 글들을 이해하고, 이 학자들의 말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10시간 넘게 버티는 시간들은 너무 고통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과목 교재 분량이 1300페이지를 넘고, 문제집까지 포함하면 30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일일이 정리해 가며 공부하는데 참 많은 생각이 올라왔다.


학원 보내달라고 졸라도 다니던 학원조차 끊으라던 아버지의 성화에 제대로 학원을 다니지 못해 매번 투덜거렸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고, 그 덕에 나는 독학에 특화된 인간으로 성장했다 싶었다.


보디빌딩 자격증, 일본어 시험, 토익, 이 수험 생활까지 거의 독학으로 하다시피 했는데 어쩌면 아빠께 감사해야 하는 건가 하며 씁쓸한 마음도 들었고……




시험 마지막 주에는 두통, 생리통, 복통까지 겹쳐 약으로 버텼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커피를 거의 수혈하듯 아침부터 밤까지 마셨더니 카페인 중독증에 걸려 지금까지도 힘이 든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서인지 여전히 눈이 흐릿하고, 무엇보다 미간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공부 시간이 부족한 날은 사탕과 커피로 버티며 밥을 굶기 일쑤였다.



시험 당일.

하필 오후 시험이라 오전 내내 긴장은 극에 달했고, 부모님들 응원 전화는 나에게 너무 뾰족하게 느껴질 만큼 버거웠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공부하지 말라고 말리지 마시고 응원 좀 해주시지……

끝까지 나는 내 안에 감정과 싸워야만 했지만 이내 그 감정에 져주자 마음먹으니 금방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시험장에 앉으니 정말 혼절할 것 같았고, 처음 쳐보는 시험이라 혹여 실수는 하지 않을까 걱정만이 가득한 가운데 빨리 끝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강렬하게 올라왔다.



1시간 동안 엄마를 위해 그렸다는 딸


내가 그 시간 동안 싸워왔던 그 감정들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시험 막바지에는 컨디션 조절하느라 곁에 잠들지 못하고 따로 자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는 아이들을 안아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다리 다치고는 더더욱 놀이터에 같이 나가주질 못했다.

남편의 하루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고, 묵묵히 집안일을 해주는 모습에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책상에 앉아있는 자체가 너무 힘들고 버거워 울며 공부했던 날들도 그렇게 다 지나갔다.




공부하며 힘들 때마다 다이어리에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24년에 이루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 모조리 적어 내려갔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에 다시 글쓰기‘

그렇게 정신을 좀 차리고 이렇게 앉아 글을 써본다.

.

.

.

.

.

.


마구 쏟아내고 나니 너무 좋다.


결과는 모르겠고 나는 또 한 번 나를 넘었다.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것은

감정을 비우면 꽤 많은 일들을 즐겁게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몇 달 만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네요. 브런치앱에서 글 쓰라는 알림이 올 때마다 참아야 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저에게는 소위 엉덩이힘이라는 게 길러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남길 수 있는 작가로 거듭나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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