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40대가 되고부터,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어느 순간 했던 말을 또 하는 것 같은 내 모습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했던 말을 또 한다는 건 지금 구간의 반복이 아니라 예전에 했던 어떤 말들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꼭 어느 순간에는 그 얘기를 꺼내더라는 거다.
소위 말해 구질구질한 그 언젠가 옛이야기.
나이를 먹으면서 정말 교양 있고 우아한 어른들을 보며 동경했다. 내 주위에는 그런 어른들을 찾기 힘들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부터라도 좀 점잖게 나이 먹자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쉽게 흥분하며 화내지 말기,
점원들에게 매너 있게 대하기,
어떤 일이 있어도 새치기는 금물,
되도록 누군가와 싸우지 않기.
.
.
.
.
.
중년이 되어 바라본 주위 어른들의 모습은 어른의 탈을 쓴 다섯 살배기 아이의 모습이라는 걸 자각한 순간 어른스러움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는 그저 한 인간의 에티튜드일 뿐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른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실수투성이이며, 무례할 때도 많고, 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며, 자주 싸우곤 한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아니, 이해해보고 싶었다.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덩어리가 되어 온몸을 떠도는
가 싶었다. 그렇다면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나.
몸속에 나쁜 것이 들어오면 비워내고, 좋은 것들로 채워야 한다.
쉽게 말해서 만약 나쁜 음식을 먹고 장염에 걸렸다면 비워낸 뒤에 따뜻한 죽을 먹는 것처럼 마음도 그래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치유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문제임을 인식 조차 하지 못하는 문제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느끼는 것들이 많다.
조금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애정을 갈구한다.
여기가 아파. 저기가 아파. 아픔을 토로하기도 하고 손톱을 뜯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사랑을 채우려는 시도를 한다.
순간순간의 애정이 채워지면 그나마 낫지만 오래된 상처나 기억에 대해선 반복해서 말하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은 영혼이 맑아서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옅어지는 일도 어른보다는 쉽다.
반면에 어른들은 치유되지 못한 채로 오랜 기간 아픔을 축적한다. 그래서 그토록 했던 말을 또 반복하나 싶다. 아프다고, 아팠다고, 그만 아프고 싶다고……
하지만 슬프게도 그 마음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줄 이는 없다.
아이의 울음보다 어른의 울음이 두려운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달래줄 수 있는 이의 부재.
살아가면서 겪는 비슷한 문제의 굴레를 매번 똑같이 맞이하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반창고를 붙여줄 수 없는 마음의 부재일지도 모르겠다.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
그 긴 시간이 내가 나를 타인으로 인식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만 알 수 있는 모습이……
해본 적 없고,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을 느끼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연결되어야 하고 그 연결 안에서 나를 안아줄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행동이
아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