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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07. 2024

트럭을 돌아서자, 피 묻은 손 부러진 발이 겹쳐 있었다

https://blog.naver.com/pyowa/223472104771



요즘 출근길에 턱걸이를 한다. 3세트에서 5세트하는데 하고 나면 숨이 찬다. 뿌듯해하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지하철 입구에 트럭이 세워 있었다.


트럭에 다가가자 바퀴 사이로 사람의 팔과 머리칼이 보였다. '노숙자가 왜 인도에서 자고 있을까'  트럭이 가까워지자 팔이 네다섯개가 보였고, 방향을 달리하는 머리칼이 겹쳐 보였다. 술마신 노숙자들도 겹쳐자진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순간이다. 싸하니 겁이 났다.


트럭을 돌아서자 피묻은 손, 부러진 발이 겹쳐 있었다. 흠칫 놀랐지만, 가만히 보기도 무서웠다. 흘깃 보니 실물 크기의 모형시체다. 모형시체가 서너겹으로 쌓여 있었다. 언뜻봐선 모형인줄 모를 정도다. 영화에서 쓸만한 생생한 모형시체였다. 15구 정도의 모형시체가 각자의 사연으로 학살당한 듯, 찢어진 옷을 입고, 피를 흘린 채 여러겹으로 쌓여 있었다. 


여직원은 탑차에서 모형시체를 하나씩 내리고, 남직원은 쌓여진 시체를 들쳐메고 건물로 날랐다.


시체 트럭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꿈같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올라가 사진이라도 찍어볼까하다 관뒀다. 다시 보면 왠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쌓여진 시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떠올려 보았다. 중세시대, 세계대전, 한국전쟁, 역병 등이 떠올랐다. 내 경험이라면 이라크에서 근무할 때, 어디에서 몇 명이 죽고, 몇 명을 죽였다는 매일매일의 회의가 떠올랐다. 그래도 시체더미에 대한 보고는 한 번도 없었다. 


시체더미의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 '무감'할 것 같다. 죽은 사람이니,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다. '땅에 묻지 않으면 썩을텐데'라는 나에 대한 걱정만 잠깐 스치며, 오늘처럼 계속 출근길로 걸어갈 것만 같다.



《메두사호의 뗏목》(프랑스어: Le Radeau de la Méduse) 테오도르 제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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