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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길동 Jun 09. 2024

관료는 군주의 힘과 신뢰를 끊임없이 탐지한다.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https://blog.naver.com/pyowa/223473431582



이번 암행어사들이 수령을 탄핵한 것을 보니 태반은 세력 없는 음관들로 현달한 거족은 열에 하나도 없었다.

(정순왕후,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관료는 군주의 힘과 신뢰를 끊임없이 탐지한다. 


관료에게 군주의 신뢰란 천군만마와 같은 것이어서 모든 논리를 이기는 힘이 생긴다. 군주의 신뢰가 없는 법령, 논리, 예산, 계획은 동력을 잃고 좌초되기 쉽다. 관료들은 군주의 힘이 얼마큼인지, 신뢰가 누구를 향하는지 쉼 없이 탐지한다. 



군주의 신뢰가 쌓인 관료는 추앙받는다. 두텁던 신뢰도 결국 식기마련이다. 관료들은 그 때를 알아채고,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군주의 신호가 있으면, 아니 그보다 한발짝 빠르게 절뚝거리는 동료를 공격하고 군주의 신뢰를 빼앗아 추앙받는 관료로 등극한다.



권력이 추앙받는 관료에게 집중되면, 어느 순간 군주도 추앙받는 관료에게 기대게 된다. 그의 판단력과 그의 장악력이 없이는 국가를 끌고 나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흠칫 놀랄 것이다. 이때 군주가 관료를 교체하려면 자신의 직을 걸어야 한다. 추앙받는 관료를 대체할만한 인물과 도려낼만한 구실과 발생할 위험에 감내할 결단이 있어야 한다.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은 스스로 분화한다. 어느 순간 군주는 고립된다. 가까운 관료들은 하나씩 실각하고, 많은 관료들이 충성을 거둬들인다. 이제 군주의 권한은 관료의 조언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군주의 힘은 사그러들었다.



군주가 기울면 모든 것이 기운다. 군주가 기울면 군주의 신뢰는 무의미해진다. 책임만이 전면에 등장한다. 관료는 실패하지 않을 업무만 추진한다. 새로운 실권자에게도 미움받지 않을 일, 책임지지 않을 일만 찾는다. 위험을 상하로 분산하여 자신에게 책임이 도착하지 못하도록 한다. 각종 위원회와 자문기구를 만들어 책임에서 멀어지려 한다. 책임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권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책임에 비하면 관료에게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순조는 정순왕후의 수렴첨정으로 임금을 시작했다. 정순왕후가 수렴을 거둔 후에도 대부분의 일을 비변사에 맡겼다. 관료는 비변사를 바라봐야했고, 관료는 비변사라는 기구 뒤에 숨을 수 있었다. 관료들은 책임질 필요가 없었고,하나마나 한 일을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었다. 순조는 실책이 없었지만, 성취도 없었다.



조선의 정치는 신하와 척신간 대결의 역사였다. 많은 임금이 척신을 몰살시켰다. 수없이 제거했지만 임금이 약해지면 척신은 곧바로 나타났고, 임금이 약해진 만큼 척신의 힘은 강해졌다. 그만큼 당쟁은 척신이 제거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척신이 강해지자 당쟁마저 사라졌다. 척신 김조순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어떠한 관직도 맡지 않았다. 나름의 겸손과 탕평으로 척신정치의 적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순간 척신정치의 꽃이라 할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이제 신하들의 파당이 아닌, 혼맥에 의한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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