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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선라이즈 in 콜롬비아

코런틴, 콜롬비아 메데진

by 노마
지루했던 일상으로 다시 다운로드 받은 앱

로엘티의 집에서 한달 살기 이후, 하산해 평지에 숙소를 잡았다. 이번에도 호스트 패밀리와 함께 사는 집 게스트룸에 머물렀는데 성격이 호탕한 아저씨 호스트였다. 수영장이나 그럴 듯한 뷰는 없지만, 귀여운 고양이 2마리와 프랑스 로코코풍의 고풍스러운 빈티지풍으로 꾸며진 집이 인상적이었다. 호스트와 그의 파트너는 오지랖넓은 수다쟁이에 가까웠는데, 첫 날부터 남자친구 유무를 묻더니, “콜롬비아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면 되겠네”하며 자기네들끼리 껄껄 거리곤 했다.


일요일 낮, 콜롬비아의 스타벅스로 종종 불리는 후안 발데스 카페(juan Valdez Café)에서 계약된 원고를 쓰고 있었다. 후안 발데스에서 내리는 커피는 스타벅스 숏 사이즈만한 컵에 에스프레소 샷 3개가 들어간 것처럼 상당히 진했다. 카페인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음에도, 한 잔 마시고 머리가 살짝 어지러워 초코 브라우니를 시켜 당 충전과 함께 맛의 균형을 맞춰주었다. 그날 따라 1시간동안 300자도 못쓸 정도로 글이 계속 막혔다. 창 밖을 통해 화창한 날씨를 보고있자면, 일요일 오후 낮에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면서 자괴감이 드는 것이었다. 홧김에 주변 밋업 (meet up) 정보가 없나 찾아봤지만 일요일 밤에는 콜롬비아 사람들도 다 쉬는지,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 같이 맥주나 한 잔 할 사람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 때 멕시코에 있을 때 친구의 등쌀에 못밀려 설치했던 데이팅앱이 눈에 들어왔다. 수개월간 켜보질 않아서 앱은 클라우드 다운로드 표시로 전환되어 있었다. (아이폰엔 종종 오래 사용하지 않은 앱을 자동으로 정리하는 기능이 있다. 구름 표시가 떠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앱을 다시 다운로드 받는데 기존 로그인 정보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냥 함께 맥주 마실 친구를 구해볼까란 생각으로 앱을 다시 다운로드 받았다. 대체 이런 사진을 왜 올렸을까 싶은 남자 프로필을 계속해서 왼쪽으로 넘기다가 허무감이 밀려왔다. 오늘까지 써야할 글도 못썼는데, 지금 뭐하는 거지란 생각과 저녁에 맥주라도 함께 할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내적 갈등이 빚는 가운데 손가락은 계속 왼쪽으로 넘길 뿐이다.


“문자 메시지로 대화하는 건 잘 못해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요. I’m not good at texting. Let’s meet and talk in person” 간만에 정상적인 사진이 나왔길래 살짝 손가락을 내려서 본 그의 프로필 첫 줄에 이 사람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허세스러운 셀카 사진도 없고, 몸자랑 하는 사진도 없다. 여행하면서 찍힌 자연스러운 사진에 눈이 가 처음으로 오른쪽으로 넘겼다.


“축하합니다, 매칭되셨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 빨리 매칭이 될 지 몰랐는데, 매칭이 된 후 메시지를 먼저 보내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매칭되자마자 바로 보내면 노골적인 거 같아, 한시간 정도 있다가 보내야지란 생각으로 다시 원고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원고를 다 쓰고 난 후에야 시원한 맥주 생각과 함께 아차 싶었던 거다. 그냥 혼자 마셔야겠군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에게 가볍게 첫 메시지를 보냈다.




“와, 반가워. 사실 오늘 카우치서핑 행아웃으로 지금 6~7명 모일 예정이거든. 거기로 가는 중인데 너도 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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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로서 일을 하며 세계여행을 합니다. 한국 환승하면서 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 후 다시 배낭을 메기 시작했습니다. 뻔하지 않은 여행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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