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창작과 존중에 대하여
"왜 그렇게 출처를 밝혀야만 했나요?"
인터뷰 기자의 물음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아.. 허락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어 반대로 내가 기자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인사를 할까요?
왜 줄을 서서 기다릴까요?
왜 자리를 양보할까요?"
기자는 나의 물음에 의아한 듯 말했다.
"글쎄요. 그냥 당연한 거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꺼냈다.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요."
기자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그 눈을 보며 이어 말했다.
"그 문장의 출처는 나 보다 먼저 도착한 그 누군가의 발자국이니까요."
누군가 떠올린 문장은 그 사람의 마음을 꺼내 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시간, 감정, 가치, 기억들을 그 한 줄에 넘칠 듯 말 듯 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출처를 밝히고, 이름을 꼭 남긴다.
나의 답변을 듣고 기자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발자국이요? 표현이 그럴듯하네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설명했다.
"나 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다는 건
먼저 아팠거나,
먼저 설레었거나,
먼저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내 선배나 다름없어요. 그 이름은 잘 잊히지 않아요."
그런데 정작 이름 없이 돌아다니는 문장들은
더 쉽게 소비되고, 더 빨리 잊히기 마련이다.
이름 하나만 있었다면, 누군가의 이야기로 남았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에 의해 나의 이름이 지워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프고 눈물 흘릴 게 뻔하니까.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기자는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왜 출처를 밝혀야만 했는지 정리하자면
누군가 만든 그 무언가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란 말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렇죠!
그 문장을 만들기까지 그 사람이 걸은 시간과 노력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나는 손으로 발자국 모양을 그려 보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창작물 위에 서 있다.
그 발자국은
나로 인해 쉽게 지워질 수 있지만,
만약 남긴다면,
만약 지켜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삐! 녹음이 완료되었습니다!'
기자의 휴대폰에서 갑작스럽게 알림음이 울렸다.
당황한 기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 녹음한다는 걸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나는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좋은 글을 위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좋은 말도 좋은 글처럼, 허락을 담아 기록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기자는 그제야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 제가 팬으로서 여기 작가님 책에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책을 받아 흔쾌히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기자에게 건네려다 다시 내려놓고
천천히 메시지 하나를 더 적어 보았다.
'지금, 당신은 나의 발자국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향해 당신이 걸을 차례입니다.’
by 준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