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
어그로꾼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텔레비젼 방송이나 유튜브, sns는 갈등을 조장하고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공장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하는 말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형편 없거나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끌려다닐 수도 있는 교묘하게 사실을 가린 것도 많다.
'저 사람은 저게 정말 사실이라 믿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어그로꾼은 그것이 사실이라 믿는 순수한 어그로꾼과 특정한 이익을 위해 사실이 아님을 알고도 행동하는 어그로꾼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양쪽 모두 좋아하지 않는다. 전자는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그릇된 신념에 빠져있을 확률이 높고 후자는 대중을 속이거나 또는 상대 진영을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실리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후자를 표현하는 말을 '프로보커터'로 일컫는데 후자가 더 악질에 속한다.
p99 : 프로보커터는 말 그대로 도발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목경제의 신종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p69 소셜미디어는 앉은 자리에서 전 세계인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좋아요-팔로우의 알고리즘을 따라 형성된 생각의 지도는 갈수록 작달막해진다. 심지어 그 좁다란 세계관의 주인이 본인이라고 장담하기도 힘든 시대가 되었다.
p74 정치 유튜버들은 대체로 항상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시사를 단순화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의 원인을 의인화해 그들에 대한 공격을 선동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떤 추상적인 구조에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인물이나 특정 집단에 있다는 진단은, 그들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간편한 처방으로 이어진다. (중략) 분노와 격동하는 감정은 스펀지에 잉크가 스미듯 시청자에게 손쉽게 전이된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댓글은 이를 더 증폭시킨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유튜브는 개방적 공간이면서도 폐쇄된 공간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요를 누르고 관심있어할 만한 것들만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즉 활동하는 인터넷 공간은 나의 관심사와 비슷한 사람들로만 묶어낸 공간이며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된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 명확하게 나눠지게 되면서 혐오가 생겨난다. 혐오는 프로보커터들의 넉넉한 통장잔고가 된다.
p116 요동치는 환경 안에서 우울감이 만연해지는 가운데 그에 대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상대적 우월감을 확보하고자 타자를 주변화하고 '우리'와 '그들'을 분리한다. 이 과정에서 다종다양한 혐오 선동이 공감과 동의를 얻으며 주목받는다. (중략) 정치에 대한 신뢰가 깨진 사회에서는 명쾌한 입장, 또렷한 전선, 절대 악을 상정한 성동과 도발이 호소력을 얻는다. (중략) 주목경제 시대에는 신념이나 대의는 간데없이 포퓰리스트의 화려한 퍼포먼스만 차용한 존재가 등장한다. 도발과 음모론과 어그로의 이름으로, 대중의 주목과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서라면 어떤 막말과 추대도 불사하는 이들, 바로 프로보커터다.
프로보커터는 확실하게 세상을 망치고 있다. 공론장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오염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프로보커터와 멀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