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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Oct 18. 2021

유감입니다. ‘정치병’입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은연중에 어필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속된 말로 그들을 표현한다. ‘정치병’이 단단히도 걸렸다고. 그들의 모습은 거창하게 포장되기도 하고 실제로 성과도 내는 듯하지만,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정치병’ 걸렸다는 이야기. 한때 나도 들은 적 있다. 정당을 창당하고 활동을 막 시작할 때였는데 그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감이 자만과 오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욕심도 커졌다. 기왕 활동하는 거 금배지도 달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주제도 모르고 여기저기 설치고 다녔으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순간이다.   .      


 정치병 환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됐다. 그때쯤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내 생각과 주장이 다 맞지 않음을 알게 되던 시기라 다행히도 주제 파악을 할 수 있었던 때였다. 덕분에 나락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내게 정치병 걸렸다고 말해주었던 분에게 여전히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정치 권력을 목표로 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정치 자체가 정치 권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 없는 정치권에 ‘청년 정치인’은 더더욱 필요하다. 그동안 유권자인 청년의 힘이 부족했고 청년 정치인이 전혀 없었기에 청년 문제는 등한시됐고 선거 때나 등장하는 청년팔이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권한 있는 권력이 아닌 ‘권력’ 그 자체가 되고자 한다면 기존 정치인과 다를 게 없다. 진정성 없는 말과 행동, 속 보이는 행동, 우리가 정치를 혐오하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소년등과(小年登科)’라는 말이 있다.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얼핏 좋은 뜻 같지만, 실은 인생 불행의 3대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인생 악재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라고 하고 ‘소년등과부득호사(少年登科不得好死)’라고도 한다. 후자는 소년 시절 과거에 합격하면 좋게 죽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장’이나 ‘대표’를 달고 있으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만나기 힘든 정치인들이나 기관장들. 소위 ‘급’ 높은 사람들 말이다. 공식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자리도 많고 언론에 출연할 기회도 생긴다. 잘만하면 정치인과 친해질 수 있고 이해관계가 맞으면 협력관계가 될 수도 있다. 가는 곳마다 급 높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표님’ ‘위원장님’이라 칭해준다. 띄워주는 사람도 많아지고 자랑할 거리도 많아진다. 나중에 한자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나’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는 착각이라 말하고 싶다. 직책의 임기가 끝나거나 청년 시기가 지나면 모두 사라지는 찰나의 허상이니 말이다.     

 소년등과일불행은 자칫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성숙하기에 탐욕과 욕망으로부터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으나 젊은 날 성공하여 출세 지향적인 모습이 되는 걸 경고하는 뜻도 포함돼 있다. 물론 젊다고 탐욕에 쉽게 빠지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많아도 오만한 사람이 있으나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 영역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면 혼자만 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 활동 영역은 아슬아슬한 상태다. 국회의원을 청년으로 뽑았더니 쟤도 똑같네! 같은 말이나 청년단체 활동하라 응원했더니 정치인 라인만 잡네! 같은 말. 출세하려고 하네 같은 말로 매도당하기 쉽다. 청년의 필요성이 점점 주목받고 있으나 기득권 세력보다 힘이 약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 상대하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런 와중에 청년 정치와 청년 활동이 순수성을 잃고 지금의 ‘정치’와 같이 혐오감과 불신을 불러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청년에 대한 불신과 청년 문제도 그만큼 심화할 게 뻔하다. 앞으로 활동을 시작할 다음 세대는 더욱 힘든 환경에 처할 것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활동을 하며 나락으로 가는 동료를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순수성을 잃고 출세 지향이 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엔 청년대표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도 접했다. 기사 내용을 봤을 땐 권력형 범죄였다. 힘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감히 표현하자면 그것도 정치병이었다.     


 소년등과가 불행으로 불리는 건, 앞서 이야기했듯 성찰할 시간이 부여되기 전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모습이 자주 비치니 성찰보다 자신을 보여주는 모습에 집중하는데 빠질 위험도 많다. 외부영역은 넓어지고 직책은 올라가더라도 사람 개인으로 보면 괴상해질 수 있다. 결국 교만하게 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수를 하게 되니 불행이라고 하는 거다.      


 물론 청년 활동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청년 정치의 특성상 소년등과는 불가피하다. 다만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이야기다. 개인한테도 큰 불행이겠지만 청년 활동 영역에도 불행이다. 그러니 이 글은 같은 영역에 있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당부에 가까우며 나를 지키기 위한 글이기도 하다.        


 ‘청년 활동 영역’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부디 정치병에 걸리지 않고 부디 같이 잘 나아갈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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