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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태 Feb 01. 2023

괜찮은 듯 합니다

서른 둘입니다. 아니, 이제 곧 만 나이로 계산 해야하니, 다시 서른입니다.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서른을 맞이 하게 됐습니다. 처음의 서른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처럼, 두 번째 서른도 아무렇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가끔, 헛헛한 마음도 생기지만 괜찮습니다. 삶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던 시기를, 이제는 지나와서, 다른 시각과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시들어진 것일 수 있고, 또 어쩌면 무뎌진 것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닳아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처음 서른이 되었을 때, 글을 하나 쓰고자 했습니다. 왜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고 돌아보는, 그런 흔한 일처럼 말입니다. 쓰고자 했으나 쓸 수 없었던 건, 그다지 감흥이 없었기에, 쓰는 일은 뒤로 미루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일 년을 더 살아보면, 쓰고 싶은 말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제목은 '서른으로 살아보니'로 짓고서 말입니다. 끝내 이 제목도 쓰여지지 못 했지만, 괜찮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무언가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던 시인의 글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살아있는 이들의 이야기와 노래에 애정을 담기 위해선 많은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내려놓아야할 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라는 말이 쓴 맛이 나지만, 어쩌겠습니까. 쓴 게 몸에 좋다고 하니 말입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소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풍선을 한계까지 불어 터트려 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충분히 소란스러운데 굳이 나까지 보태고 싶지 않아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쓰고 싶지 않다'가 된 건 이러한 이유들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지 않는 것도 괜찮은 듯 합니다. 마음 한켠에 무언가 걸린 듯 남아있지만, 괜찮습니다. 무언가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말과 같고, 쓸 수 있는 상태라는 건, 풀어내야할 말들이 많다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괜찮은 듯 합니다. 단어와 문장이 여전 긿을 잃고 헤매여도 말입니다.


글을 쓰는 삶이 여행이었을지, 쓰지 않는 삶이 여행이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퍽 글다운 글을 쓴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돌아왔다고 해야할 지, 떠난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으나, 여행은 짐을 꾸리고, 또 풀어내는 일이기에, 지금은 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아름 쌓아 두었고, 몇 개는 잃어버릴 각오를 한 그런 짐들 말입니다. 짧은 여행이었을 지, 긴-여행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ps


얼마 전에는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가보았습니다. 살던 집은 허물어졌지만, 집 앞 자주가던 슈퍼가 있던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물론 슈퍼는 사라지고 어떤 정식집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마침 잘 됐다 싶었습니다. 배가 고팠기에 한끼를 때우면 적당하겠다 싶었습니다. 더운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기억나지도 않는 그 슈퍼의 이름을 생각해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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