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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진 Mar 25. 2021

15.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너의 우울은 어디쯤이니?]

우울증과 공황장애, 대인기피를 앓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어진 일상. 집콕이나 가게콕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하루 중 외출이라곤 반려견과 산책하는 일, 또 가끔 식재료를 사러 왕복 10분 거리의 마트에 다녀오는 게 전부인데 반려견마저 없었다면 어쨌을라나.


어느새 집돌이가 되어버린 일상에 남아도는 건 시간이었고, 워낙 '초록빛'을 좋아하는 터라 관심의 흐름은 자연스레 식물로 쏠렸다. '그래, 시골에 살면서 텃밭까진 아니어도 작은 화단 정도는 가꾸어야 하지 않겠어? 도시를 떠나 마당과 화단이 있는 집에 사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라며, 과연 얼마나 지속할지 모를 자기 최면에 빠져 들었다.


참! 시골에 산다고 해서 모든 채소나 화초를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채소는 파종과 정식(모종을 옮겨 심는 일)의 때가 있고, 화초는 수요가 부족한 탓에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도시에서야 수요층도 많고 홈가든을 가꾸는 사람도 많으니 다양한 종류의 화초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조금 색다른 화초를 구하려면 참 막막해진다. 그러니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데, 바로 온라인 쇼핑. 이럴 땐 택배와 배송의 천국인 우리나라에 사는 게 참 다행이지 싶다.


틈만 나면 모종을 파는 쇼핑몰에 시간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갖가지 모종과 씨앗 쇼핑에 한동안 푹 빠져 지냈다. 하나에 꽂히면 주변은 안중에도 없이 파고드는 (괴팍한) 성격이라 흡사 '식물도감'이라도 만들 태세였다고 할까?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려 기억나지 않을 게 뻔하면서도, 물은 언제 어떻게 줘야 하며 온도는 어떻게 유지해야 되고, 가지치기는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은지, 노지 월동이 가능한지 아닌지 참 열심히도 공부했더랬다.


그 결과 멀고 먼 경기도 어느 농장에서부터 출발해, 남해라는 시골 구석의 작은 집 화단으로 옮겨진 전리품 같은 식물들의 품종을 얘기하자면, 흔한 로즈메리부터 밴쿠버 제라늄, 이메리스(혹은 이베리스라 불림), 너도샤프란, 상사화(꽃무릇을 닮았다), 청단풍, 테이블 야자, 알로카시아 등의 실내외를 넘나드는 관상용 식물들 뿐만 아니라 고수, 샐러리, 대파, 부추 등의 식용 채소까지... 적다 보니 참 많이도 사서 심었다.


솔직히 식물을 좋아해서라기 보다 흙을 만지는 시간이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누구나 흙장난을 하는 것도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심리 성장 과정 중에 '촉감 놀이'를 하듯, 흙을 조물조물 만지면 손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이 참 좋았다. 한 손에는 호미를 들어 이름 모를 풀은 뽑아내고, 흙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다시 화단의 땅을 고르게 만드는 동안 손에 닿는 흙의 질감과 폴폴 흙먼지 사이로 풍기는 냄새가 참 좋았다. 흙을 만지고 풀을 만지면 좋아지는 기분에 계속 취하고 싶었다. 화단 가꾸기를 핑계 삼아.


하나 둘, 화단에 옮겨진 아이들 중 먹는 채소들은 그럭저럭 잘 자라줘서 적당히 식재료로 활용하는 즐거움도 누렸지만, 관상용 식물들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식물 중 살아남은 아이는 이메리스, 상사화, 알로카시아뿐이었다. 가만히 놔둬도 잘 자란다는 선인장마저 병들게 하는 가드닝계의 마이너스 손인데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화단 가꾸기를 시도하며 느낀 한 가지는 관심을 너무 많이 줘도, 또 너무 안 줘도 식물들이 죽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무관심한 듯 적당한 관심이 식물들에게 이로운 듯했다. 너무 자주 물을 주는 것보다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어 수분과 양분을 뺏기는 걸 막아주는 게 오히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잘 맺는 듯했다. 어쩌면 자연이 내려주는 빗 속의 수분과 흙 속의 양분으로 충분했을 텐데, 잘 키워보겠다고 흙을 계속 건드리고, 풀을 만지는 게 기분이 좋다는 이유로, 단지 내 기분 좋자고 자주 물을 주며 잎이 조금만 상해도 발을 동동 구르며 가위질을 하질 않나, 손가락 크기의 잡초만 보여도 제깍 뽑느라 땅을 휘저어 놓는 통에 식물을 괴롭혀 스스로 건강하고 굳건하게 뿌리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려견과도 같이 생활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오히려 해로운가 보다. 어디 관심과 간섭뿐이랴, '지나친' 것은 무엇이든 좋지 않음을 화단 가꾸기를 하며 또 한 번 깨닫는다. 도시를 떠나 시골 생활을 하는 동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겼던 것도 주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이 한몫을 했는데,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하곤 집돌이가 되어 화단 가꾸기를 하며 상대가 사람만 아니었을 뿐이지 같은 행동,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애정과 간섭 사이의 시소를 타거나, 쫓고 쫓기며 잡고 잡히는 술래잡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인 걸까. 마음 상처 받지 않고 건강해지려면 무심한 듯 적당한 관심을 갖고 지내는 게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고, 풀을 만지면 즐거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너무 중독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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