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안녕하시길요!
이십 대 중반부터 해오던 일을 사십이 조금 넘어 그만두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포기하기 싫었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른 듯해 퇴사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해오던 루틴을 깬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저를 다독였습니다. '지금까지 착실하게 살았으니 앞으로는 재미있는 도전을 해보자'고요.
퇴사를 하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곳을 여과 없이 보도했고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아이의 학교 알림 앱도 자주 들여다 보았습니다. 개학일이 수차례 연기되어 수시로 체크해야 했고 가정에서는 어떻게 지도해야하는지 확인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첫째 아이는 ebs방송을 보는 것으로 수업이 대체되었고 유치원생이던 둘째는 유치원에서 매주 놀이 꾸러미를 가정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제가 마침 퇴사를 하고 집에 있었길 망정이지 회사라도 다녔다면 발을 동동 굴렀을 노릇입니다.
이듬해에는 아이들이 등교를 하는가 싶었는데 온라인수업과 등교를 병행하는 겁니다. 등교를 했다가 교내 확진자가 발생하면 서둘러 하교를 했고 그 후 며칠간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그해 갓 초등학생이 된 둘째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컴퓨터로 만나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아이들의 등교일이 들쑥날쑥하자 저의 손발이 꽁꽁 묶이는 날도 여러 달 지속되었습니다. 퇴사할 즈음 마음먹었던 재미있는 도전은 고사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정체성마저 하나 둘 잃어갔습니다. 엄마라는 명찰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그렇게 2년 반이 흘렀습니다. 아이들과 매일 아침점심저녁을 먹었고 안고 비비고 웃었으며 때로는 언성 높여 혼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며 복작복작 지냈습니다. 스스로 엄마 역할엔 소질이 없다며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울기도 했고요. 세상에 좋기만 한 엄마가 어딨어, 하며 다시 일어서기도 했습니다. 삼 시 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무척이나 고단했는데 아이들과 그림책 읽기는 또 즐거웠습니다.
어린 시절 제 방 책장 한 켠에 위인전이 한 질 있었는데요. 위인전에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니, 알에서 주몽이라는 사람이 나왔다는데 얼마나 흥미진진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읽으려 해도 거친 회색빛 종이에 빼곡히 박힌 글을 끝까지 읽어낼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묵직한 위인전은 고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연령별 권장 도서의 기준이 뚜렷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요즘의 그림책은 신세계입니다.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 불안과 용기까지도 작은 그림책 안에 다 있습니다. 큰 글자와 적은 글밥, 아름다운 그림까지도 잘 어우러져 말이죠.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 대화거리가 샘솟습니다. 우리끼리 따라 하며 킥킥대는 대사도 생겨납니다. 우리만이 알고 웃을 수 있는 일종의 암호죠. 권문희 작가의 <깜빡깜빡 도깨비>가 마침 생각납니다. 깜빡깜빡하는 도깨비가 한 아이에게 돈을 꿉니다. 다음날 도깨비는 아이를 찾아와 그 돈을 갚는데요. 돈 갚은 걸 까먹고는 매일 아이에게 찾아와 돈을 갚습니다. 아이의 집이 허름하니 도깨비방망이도 주고 냄비도 갖다 줍니다. 그때 도깨비가 한 말입니다. "어제 꾼 돈 서 푼 갚으러 왔다. 방망이도 받아라, 냄비도 받아라" 노랫말 같죠. 아이와 약간의 음과 리듬을 넣어 노래처럼 따라 했습니다.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무얼 할 것인지 아이와 이야기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밥 나와라, 반찬 나와라"하며 삼 시 세끼를 해결하는 상상을 하며 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에는 내용이 웃긴 책, 그림이 아름다운 책, 메시지가 마음에 와락 안기는 책 등 다양합니다만, 저는 시비 거는 책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림책을 읽을수록 '근데, 욕망은 나쁜 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게 정확히 뭐지. 두려움은 극복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극복은 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욕심은 나쁜 거야,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해, 용기를 내야지'와 같이 틀에 박힌 바른말을 무심히 뱉어내고 있진 않았나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조차도 해내기 힘든 삶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아이들 마음에 조금씩 심고 있었던 겁니다.
책을 읽으며 품었던 의문들과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정리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저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또 조금은 일어설 힘도 얻은 것 같습니다. 어렵게 만든 긍정의 근육이 모두 빠져 허약체로 돌아가기 전에 방황하는 나의 생각들을 글로 붙잡아 보겠습니다.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고, 또 괜히 나의 별 볼일 없는 상념들로 무기력이 전염되진 않을지 걱정이 됩니다만, 모두가 제 자리에서 안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