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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Oct 16. 2021

빙애기초록 어멍 조름만

   매일 아침 종종걸음을 하는 노란 병아리 한 무리를 만날 때마다 쉬어남은 해 훌쩍 넘게 오래된 일이 떠오른다.


   제주시에서 열두 참(약 24킬로) 떨어진 중산간 마을에 살았던 대여섯 살 무렵, 시에 사는 사촌 형이 장가를 갔다. 며칠 전부터 시에 갈 생각에 들뜬 나는 결혼식 전날 새 옷을 입어보고는 더 들떠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빨리 가야 할 텐데 어머니는 달그락달그락 출발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운당 세거리까지 두 참 반(약 5킬로)을 걸어가서 두어 시간마다 오는 시외버스를 타야 했으니 서두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자꾸만 보채자 어머니는 “경 허문 저영 감시라(그러면 저리로 가고 있라)” 하셨다.


   나는 동알동네(동쪽 아랫동네) 우리 집 정낭(제주식 대문)을 나서서 백 걸음쯤 잿빌레(돌무더기 언덕) 할머니 집을 지나 올레길을 나섰다. 큰길 퐁낭(팽나무) 우수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키 큰 소나무가 구부려 서 있고 도깨비가 나온다는 비석거리 앞에 서서 뒤를 돌아봤으나 어머니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곧 가마고 했으니 올 거야.

   울럭울럭(씩씩하게) 다시 걸었다. 중학생 형이 여름 한낮 조검질(조밭김매기)을 매다가 흐르는 땀과 달려드는 벌레를 털면서 ‘크면 시에 가서 똥 구루마를 끌멍(끌면서) 살아도 다시는 조검질 매멍(매면서) 살지 않으크라(않을꺼야)’고 했다는 조고미왓(작으마한 밭)을 지나고 상더럭(지금의 애월읍 상가리) 와랑와랑 사랑사랑 춤추는 왕대밭 앞까지 왔다. 또 돌아봐도 어머니가 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오는 중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도꼬장(인동초꽃) 달콤한 꿀을 빨면서 더럭국민학교 옆 연하못 오리가 어디에 숨었나 기웃거리다가 큰 나무의 술렁 하는 그림자에 놀라 달음질해서 하더럭(지금의 애월읍 하가리) 네거리에 뛰어들고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사방 네 갈래 어느 길이 자운당으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자 무섭고 울음이 나왔다. 꺼억꺼억 눈물범벅이 되어 한참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저쯤에서 누군가가 뛰어왔다. 얼마 전에 제대한 사촌 형이었다. 시에 일이 있어서 가던 길이었다는 그 형은 나를 달래고 잔칫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저영 감시라(저리 가고 있거라)’고 했는데 잠깐 사이에아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어머니는 덜컥 걱정되었다. 온 식구가 나서서 찾아도 없자 눈앞이 캄캄하고 급해져서 광난 두루외(날뛰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화들락화들락 뛰어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난리 하는데 마침 지나던 사람이 이야기해 주어서 상황을 안 식구들은 버스를 타기 위해 와랑와랑 자운당 세거리로 달려 나갔다.

   잔칫집에 들어선 어머니는 하객의 몰골이 아니었다. 어린 게 어찌 혼자 왔느냐 혀를 차는 숙모가 챙겨준 반(음식접시)을 들고 있던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병아리를 품는 어미 닭처럼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어디 가냐시냐(어디 갔었니). 어디 가지 마랑 꼭 내 조꼿티 이시라(어디 가지 말고 꼭 내 곁에 있어라).” 그날 어머니는 내 손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 애기 보라. 빙애기초록 어멍 조름만 졸졸 조참싱게(병아리처럼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나).”     


   코로나가 전국을 덮치자 어머니의 생활도 균형을 잃었다. 매일 가던 경로당 출입이 불규칙해지고 주일날 교회에 가지 못하는 날도 많아지자 더 빠르게 기억을 지우신다. 그러던 참인데 다행히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게 되면서 일상에 조금 활력이 생기고 있다.

   오전 9시에 가서 오후 5시쯤 돌아온 어머니는 어두워지면 내일 또 가야 한다며 일찍 누우신다. 그리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화장하고 제일 예쁜 옷을 찾아 입고 준비를 한다. 오늘 아침도 벌써 화장하고 예쁜 개나리색 웃옷을 입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이 나간 집안 뒷정리에 분주한 나를 보고 있다. 그리고 조드는 목소리로 말한다. “언제 가젠허맨?(언제 가려고 하니?) 버스 가 불민 어떵허여?(버스 가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이것만 하고 가겠다며 먼저 가시라 하면 어머니는 조심히, 그리고 천천히 현관을 나선다. 퍼뜩 며칠 전 길 잃었던 일이 생각나서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 보니 어머니는 멀리 가지 않고 집 앞 화단 모퉁이에 기죽은 듯 앉아 있다. “어멍, 무사 여기 이서?(엄마, 왜 여기 계셔요?)” “나만 못 가크라….(나 혼자 못갈거 같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정류장에는 유치원 통학버스 여럿이 서 있고 종알거리는 아이들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마중하는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차에 올라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어머니는 놓지 않을 듯 내 손을 잡고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보호센터 버스가 오고 직원이 내려서 인사한다. “아이고, 어멍. 오늘 잘도 곱닥허우다 예.(야, 어머니. 오늘 참 예쁘시네요)”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손을 놓고는 직원의 도움을 받으며 버스에 오른다. 돌아보며 손 흔드는 어머니의 눈빛이 아쉽다. 버스가 천천히 멀어져 간다.     


   오늘따라 병아리 같은 어머니의 웃옷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왼손의 어머니를 놓으면서 오른 손의 아이 손을 더 붙들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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