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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Dec 28. 2021

냄비를 닦으며

  아차 하며 달려가 불을 껐으나 이미 늦었다. 탄 냄새와 연기가 집안에 가득하다. 냄비 속은 시커먼 숱이 되어 있다. 갑자기 화가 난다. 간단히 요기할 요량으로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잠시 딴짓하다가 벌어진 소동이다.

  요즘 들어 잦아졌다. 아내가 가끔 그러더니 나도 점점 그런다. 앞뒤 창문을 한참 열어 두어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아내의 짜증이다. 아끼는 냄비만 골라 태워 먹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게 태운 냄비의 뒤처리는 모두 내 몫이다. 아내는 손목이 매우 약하다. 골격이 약한 데다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해서인지 바람만 불어도 아파한다. 류머티즘을 앓고부터는 무거운 일, 힘쓰는 일은 아예 내 몫이 되었다. 무 썰기부터 손목의 힘을 쓰는 일은 죄다 내 일이다.

  재주가 없어도 자꾸 하면 손에 익는다. 이제는 탄 냄비 처리하는 약간의 요령과 지혜도 생겼다. 사실 별것 없다. 우선 냄비를 식힌 다음 나무젓가락으로 냄비 안의 탄 것을 걷어내고,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한 국자씩 넣고 물을 충분히 채워서 5분쯤 끓인다. 다시 나무젓가락으로 긁으면 탄 것 대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강하게 붙어서 남은 것은 수세미로 문질러서 벗겨낸다. 뭐 그리 대단한 비법도 아니고, 모두 다 아는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지키려고 하는 몇 가지 원칙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끼는 냄비가 타면 당연히 속상하다. 그런데 이때 내는 짜증이나 화는 냄비가 아닌 내 맞은편 사람을 향하게 된다. 세상에 분노로 해결되는 일이 파괴 말고 무엇이 있을까.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날아간 화는 상처를 내고, 큰 분노와 반발이 되어 되돌아온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화를 누르며 흔쾌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좋은 표정을 하고 좋은 말을 하려고 한다. 딱 1분만 하면 신기하게도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뀐다.

  빨리 해치우려고 서두르지 않는다. 탄 냄새가 진동하고 시커먼 것이 앞에 있으면 속이 상하고 당장 없애고 싶어 진다. 빨리 처리하는 방법은 많다. 그냥 버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어리석은 방법이다. 세상일은 모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이루어진다. 탄 냄비도 예외가 아니다. 먼저 냄비를 식혀야 하고, 안의 탄 것을 처리하는 것도 서두르지 말고, 손쉬운 방법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쉽게 빨리 그리고 깨끗하게 탄 것을 벗겨낼까만 신경 썼다. 그래서 쇠숟가락으로 긁고 강한 화학 세제를 부어 쇠 수세미로 박박 밀었다. 효과가 있었으나 냄비가 망가졌다. 코팅이 벗겨지고 상처가 나서 음식이 더 잘 눌어붙고 타게 되어서 얼마 못 쓰고 버려야 했다. 쉽고 빠르게 해결하려다가 도리어 냄비를 망가뜨린 것이다. 그래서 나무젓가락과 베이킹소다, 일반 수세미를 쓰기 시작했다. 냄비가 상하지 않게 탄 것을 벗겨내는 것, 그것이 온전한 목적이다.

  아끼는 냄비가 타면 아내는 많이 속상해한다. 그래서 짜증을 휘두르곤 한다. 그것이 비싼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에 묻은 마음과 기억이 상한 것이 속상하기 때문이다. 아내의 짜증에는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숨어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로 맞받아 화내곤 했다. 그랬더니 일이 더 커졌다. 아니다 싶어서 입 다물고 반응하지 않아 보았다. 이번에는 무시한다며 서운해했다. 방법을 바꾸어 경청하고 공감하기 시작했다. 어려웠으나 큰 도움 되었다. 그래도 2% 부족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함께 하기다. 냄비를 닦는 동안 이것저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생각 외로 효과가 좋았다. 아내가 감정을 더 잘 가라앉혔고, 나도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실없는 농담으로 웃겨보려고도 했으나 유머엔 젬병인 나는 피식하는 웃음만 이끌어도 성공이었다.

  다 닦은 다음 뒤처리에 신경을 쓴다. 조심스럽게 해도 남자의 손은 거칠다. 붙은 검댕을 벗기려고 힘을 쓰다가 물도 튄다. 어찌어찌 냄비는 살려냈으나 주방이 많이 어지럽혀진다. 그냥 냄비만 닦고 나온다면 수고는 했으나 칭찬은 듣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쉽다. 그래서 설거지하고 주위를 정리해서 마무리한다.      


  타지 않는 냄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을 듯하다. 도리어 타지 않게 잘 쓰고, 설령 타더라도 덜 상하게 잘 닦아내면서 쓰는 것이 지혜일 듯하다. 이것은 냄비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도 비슷하지 않을까.

  수많은 지식과 지혜, 노력이 모여져서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결함 없고 완벽하며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란 없을 것이다. 어떤 불완전성이 드러났을 때, 그로 인해서 피해 또는 불평등, 불합리가 생겼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언성을 높인다. 듣노라면 쇠숟가락과 철 수세미, 화학약품을 들고 해법을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맞은편 사람들을 아예 집 밖으로 쫓아내려는 그들의 어조와 태도다. 

  명의로 존경받는 어느 의사의 ‘모든 치료제는 반드시 부작용을 수반한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병은 고쳐도 부작용은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품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명기되어야 유통이 허락된다. 강력한 해법과 능력을 외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강력한 묘수가 가져올 부작용이나 오랫동안 남을 영향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주장한 해법의 부작용을 책임질까?, 아마도 국민이 오래오래 짐과 고통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들은 말을 안 한 것이지 거짓말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오늘도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방송 매체를 넘치고 있다. 그들 모두가 수단이 아닌 진정성으로 국민의 삶과 마음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뽑혀도 우리의 장래는 밝을 것 같다.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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