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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an 12. 2022

호야등 불빛 하나

  강의가 또 취소되었다.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공적 모임이 금지되면서 대면 강의를 하지 못한 지 제법 오래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계속될지 알 길 없으니 강사인 나는 참으로 막연한 심정이다. 등불 없이 어둠 속을 걷는데 이 길 끝은 지금의 세상과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서히 자라난다. 자리에 앉아 습관처럼 낙서를 한다. 그려지는 선이 어지럽다. 

  고개를 든다. 행백리자반구십(行百里者半九十). 가훈으로 걸린 표구 옆에 작은 흑백사진이 보인다. 50년쯤 전의 초등학생인 나와 누이동생이 웃고 있다. 엉거주춤하던 나의 의식이 잠시, 오랜 기억을 더듬는다.     


  제주시의 삼성혈 동쪽 1킬로미터쯤에 자연사박물관이 있고, 그 중간쯤에 제법 깊은 하천이 흐른다. 산지천에 합류하여 바다에 이르는 그 하천의 언저리에는 스무 남짓 가정이 각기 다른 사연을 타고 흘러들어 무허가 집을 짓고 살았다. 우리는 그 집을 삼성혈 집이라고 불렀다.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너 살 위아래까지 어울려 놀다가 오후에는 물을 길어오고 저녁이 오면 쌀을 씻어 연탄불 위에 얹고 부모를 기다렸다. 그리고 밤새 그을음을 먹어서 새까매진 등피를 닦고, 심지를 다듬은 남포에 석유를 채웠다. 

  얇은 유리인 등피는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살짝 부딪혀도 깨진다. 기름이 탄 그을음을 닦으려면 요령이 필요하다. 신문지로 큰 그을음을 닦은 다음 미지근한 물에 담가 비누칠한 볏짚으로 닦는다. 그리고 깨끗이 헹궈 그늘에서 말린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 세웠다가 금이 가기도 했다. 어설프게 서두르다가는 도리어 일을 망친다는 것을 그때 배운 것일까. 

  물기 말라 깨끗해진 등피를 끼우면 호야등은 오늘 밤 어둠을 모두 몰아내겠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나의 장래도 저렇게 투명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이 드리우면 성냥을 그어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 불꽃은 나와 누이의 얼굴을 밝게 비추고, 점점 커진 빛은 커다란 공이 되어 우리를 품고 방 안의 물건도 감싸 안았다. 우리 마음에도 불이 켜지고 불빛을 바라보는 누이의 눈이 예쁘게 반짝였다.

  어둠이 깊을수록 불빛은 더 밝고 크고 단단해졌다. 그 안에 있으면 시끄러운 밤벌레의 울음도 작게 들렸고 어둠 속 부스럭 소리도 그리 무섭지 않았다. 그러다가 골목마다 ‘고등어 사세요’를 뿌리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발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가 제비 새끼처럼 매달려서 재재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한 뼘씩 키가 자라던 청소년 시절, 종일 치기(稚氣)를 휘두르며 벌떡거리다가 저녁이 되어 호야등 앞에 앉으면 차분히 가라앉고 생각에 물결이 일었다. 헤밍웨이, 셰익스피어, 김동리, 황순원, 조지훈, 이어령, 김윤식, 고미카와 준페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침에 세수할 때면 새까만 코가 한 주먹씩 쏟아지곤 했다. 초라한 나의 교양의 기반은 그때 그 불빛의 도움으로 싹을 조금 내밀었을 것이다.

  여느 해처럼 태풍이 온 어느 날, 남쪽 태평양 어디에서 왔다는 바람은 낮부터 거칠게 휘둘러댔고 저녁이 되자 천둥과 번개로 하늘을 메우고 굵은 빗줄기로 창을 두드렸다. 무서워하는 누이를 달래며 등을 켜려고 호야를 들어 올리다가 그만 미끄러뜨리고 말았다. 급히 뒤져서 양초를 켰으나 호야등보다 못했다. 누이의 울상은 풀리지 않았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호야를 사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빗속으로 뛰어갔다.

  태풍에는 우산이 소용없다. 눈을 뜨고 앞을 봐야 한다. 휘도는 바람과 비를 두려워하지 말고, 바람과 물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누가 이야기한 ‘모래 태풍 부는 사막을 건너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밤중에 2㎞ 넘게 걸어간 철물점의 문은 한참을 두드려야 열렸다. 흠뻑 젖은 나를 보는 아저씨에게 어색하게 웃으려 했으나 추웠던 것일까, 자꾸 어금니 부딪는 소리가 났다. 

   “아! 좋다.”

  호야등을 켜자 거칠게 할퀴는 바람의 소리도 차츰 작아졌다. 다시 웃던 누이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늦은 오후, 외출이 피곤했나 보다. 설핏 든 잠에서 깨어 내다본 밖은 노을이 저물고 산그늘에 잠겨 어두워져 있다. 불을 켰다. 방에 빛이 넘치자 눈이 부셔 이마가 찡그려졌다. 왠지 서늘한 느낌. 다시 불을 껐다. 멀리 작은 불빛들이 풍선처럼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밤하늘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래전 어느 저녁에도 따뜻한 풍선 하나가 보였다. 밤늦은 언덕길, 모퉁이를 돌자 누이가 내어 건 호야등 불빛이 풍선이 되어서 우리 집을 감싸 안고 밤하늘에 둥실 떠 있던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등불 하나 가지고 살 것이다. 지칠 때, 외로울 때, 혼란스러울 때 힘이 되고 벗이 되며 방향이 되는 등불. 힘들어 가라앉을 때면 조금씩 심지를 돋워 따뜻이 감싸는 불빛. 고향과 누이를 생각할 때면 호야등 하나가 마음 한 귀퉁이에 내어 걸리고, 둥근 불빛을 조용히 키워 올린다.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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