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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Feb 10. 2022

기술의 마음

'신'(新)은 노인에게불친절해도 괜찮은가

  문화강좌 신청 방법과 절차가 달라졌으니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하라는 공지가 떴다. 담당자가 신속하게 자세히 알려주었으나 쉽지 않았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나 보다. ‘강좌를 열 번 넘게 쳤으나 없다’, ‘어떻게 하느냐’고 여러 사람이 물었다. 한 분이 접속 링크를 만들어서 대화창에 올렸으나 이번에는 수강료를 먼저 입금했는데 등록되었느냐는 물음이 뒤를 이어 계속되었다. 종종거리는 담당자의 수고와 ‘절차가 어렵게 개악되었다’는 수강생의 불만을 지켜보노라니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가 크게 달라졌다.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어느 날, 나이 든 부부가 음식을 주문하는 키오스크 기계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마음에 쓰여서 당황하는 모습이 더 안쓰러웠다. 살짝 도와드렸더니 ‘다니면서 밥 먹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며 여러 번 고맙다고 하셨다. 계면쩍은 표정이 가슴을 찔렀다.      


  이번 신청 방법과 절차의 변경은 개선작업이었을 것이다. 더 낫게, 더 편하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고 개선을 한다.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이고 기술과 방법, 장비도 도입한다. 결과는 얼마나 나아졌고 좋아졌고, 효과적인지로 평가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개선과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요즘의 많은 변화에 대해 세 가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 의심은 ‘누구의 요구(needs)에 근거하는가’이다. 

  일반적으로 인문학은 질문하고 기술은 답을 찾는다고 한다. 기술에게 ‘질문’은 요구의 형태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처럼 혜택 또는 기능을 제공하는 자와 받는 자가 나뉘는 경우, 누구의 요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는가가 중요하다. 제공자 요구가 중심이었다면 목표는 업무의 편의나 성과 제고일 것이다. 자칫 이용자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둘째 의심은 ‘개선의 초점이 해결의 제공이었느냐 신기술-방법의 적용이었느냐’이다. 

  전문기술이 적용되는 개선의 많은 경우 그 기술의 전문가가 개선의 범위와 초점, 내용과 방법을 구성하고 계획하여 실행한다. 그런데 완벽과 최고를 지향하는 엔지니어들은 가끔 최고의 기술로 최첨단 쥐덫을 만들곤 한다. 물론 쥐는 그 첨단 기능 대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의심은 ‘시장 세분화에 근거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사용하는가’이다. 

  현대 사회는 많은 부분 신기술을 적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이 주도한다. 기업은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해왔고, 그 결과는 많은 분야로 확산되어 적용되고 있다. 

  기업은 자신의 상품이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한다. 그래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나이, 지역, 특성에 따라 여러 조각 시장으로 나누고 가장 크게 성공할 곳을 선택하여 집중하고, 나머지는 보류하거나 포기한다. 청소년 대상 서비스는 기성세대나 노인층을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전략은 경제성과 생산성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래서 공공 서비스에 이 전략을 적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바로 편중과 소외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바뀐 문화강좌 신청 방법에 대해 계층에 따라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어떤 계층은 잘 받아들였으나 어떤 계층은 크게 불만했을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선택과 집중이 진행되어서 학습과 적응이 느린 대상은 투자 대비 성과가 낮은 집단으로 분류되어 보류 또는 제외된 결과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최근 세상을 흔드는 4차 산업혁명은 많은 이에게 위협을 주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로봇 등이 직업 수백 만개를 없앨 것이라고 겁을 주며, 기존의 체제와 방법은 모두 무너지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창의적이고 잘 배운 젊은이들이 주도한다. 기존의 울타리들을 겁 없고 한계 없이 뛰어넘는 그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미래사회 리더의 자리를 차지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변화 적응이 느리다. 생소하니 서투르고 실수를 염려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기에도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달라지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순식간의 변화가 진행된 결과 기성세대와 노년 세대는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져 꼰대라고 지탄받는다. 조기 강판 되는 에이스 투수의 심정이 되었다. 살아갈 날이 길다는 것도 도리어 부담이다. 

  한 선배가 어느 날 친구들과 조금 젊은 차림으로 핫한 카페에서 재미있게 어울렸다. 그런데 그곳의 주 고객은 2~30대. 눈총이 영 불편하더라는 것이다. 웬 할매들이 몰려와서 물 흐리느냐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젊은이는 맑은 물, 나이 든 사람은 물 흐리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공대 4학년 2학기. 전공과목 교수가 마지막 수업의 마무리에 ‘기술에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수업 말미의 어수선함 때문에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으나 오래 마음에 남았던 그 질문이 요즘 자주 떠오르곤 한다.

  요즘 세상의 기술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기술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중요하겠다. ‘맑은 물’인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노인을 ‘물을 흐리는’ 사람으로 나누어 선택과 집중의 범위 밖으로 구분하면서 첨단의 기술로 미래사회를 만들어간다면 세상은 과연 어떤 곳으로 되어갈지 의심스러운 마음이다. 제공자 중심 사고, 기술중심 접근, 선택과 집중의 전략, 보류와 배제와 포기, 그리고 ‘물 흐린다’와 같이 일상이 되어버린 말과 생각들이 조금씩 기술에서 마음을 없애는 것은 아닐까. 내가 괜한 염려를 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2022.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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