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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환 Nov 21. 2020

코로나 경찰

본인에게 중요한 일이라도 배려는 필요하다.

"마스크 안 쓰신 분 계십니까?!!!!"


요즘 파견지 나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며칠 전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소리를 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세 명쯤 된 것 같았다. 들이닥쳤다는 표현이 좀 과격한 감이 있으나, 15명 가까운 사무실 사람들이 동시에 놀라며 돌아보기엔 충분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다행히 내가 있던 사무실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다. 처음에 소리치며 사무실로 들어온(그 일행 중 우두머리로 생각되는) 사람이 마스크 착용 여부를 한번 둘러본 다음 말을 이어갔다.


"옆 방 책임자는 누굽니까?"


느닷없는 물음에 어리둥절했던 프로젝트 총괄 PM(Project Manager)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접니다."


방문객은 대답 소리가 들여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옆 방은 방금 점검했을 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이 50%도 안되었습니다. 저는 코로나 방역 책임자입니다. 다음 불시 점검 때도 이러면,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겠습니다."


일행은 뒤도 안 돌아보고 문을 나섰고, 총괄 PM은 황급히 뒤따라 나가 옆방으로 향했다.


'뭐지?'


전에 겪어보기 못한 상황이라 우리 회사 일행들은 두리번거리다 몇 번씩 서로 눈을 마주쳤다. 우리 쪽 파트 PL(Part Leader)이 다가와 나에게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저번에도 한번 걸려서 더 그런 것(화내듯 소리친 것) 같아요."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프로젝트 중단.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몇 개월을 진행했고, 아직 갈 길이 바쁜 프로젝트를 중단시킨다는 말을 저렇게 쉽게 내뱉고 갈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의 업무가 몇 분간 중지되었다. 몇 분에 지나지 않을 시간일지 모르나 지식노동자들이 잠시 딴 곳에 정신을 빼앗겼다가 다시 본업을 집중하는 데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몇 분 혹은 수십 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물론 코로나 방역 책임자로서 당연한 행동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저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남들보다 원래의 업무로 돌아가는 시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코로나 방영 책임자들이 나가고 난 후, 갑자기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떠올랐다.

<피플웨어(3판)>에 보면 '가구 경찰(The Furniture Police)'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무 환경 조성에 책임과 권한이 있는 부서 또는 담당자가 정작 일을 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경찰 정신에 물든 설계자들은 교도소를 설계하듯 사무실을 설계한다. 최소 비용으로 가둬 놓기에 가장 좋은 구도를 잡는다. 사무실 공간에 관한 한 우리는 그들에게 별생각 없이 복종하지만 생산성에 문제가 있는 조직이라면 사무실 개선이 가장 효과 좋은 방책이다. 팀원들이 시끄럽고, 식막하고, 방해가 잦은 공간에서 일한다면 사무실 개선 외에 다른 시도는 무의미하다. <피플웨어(3판)> p.51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것은 좋지만, 상황에 맞게 판단하여 행동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로 일하는 곳에서는 소리 내어 이야기하고 주위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있던 사무실처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분위였다면, 나라면 일단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을 체크해보고, 책임자가 누군지 출입구 가까운 쪽에 앉은 사람을 통해 확인한 다음 잠깐 이야기 좀 하자는 식으로 이야기했을 것 같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코로나 방역을 담당하는 책임자입니다. 옆 방을 확인했는데 절반도 넘는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안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보고해야 하는 수준인데 보고하면 프로젝트 중단시키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주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였지만, 나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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