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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리스 Jun 13. 2023

당신의 첫 책을 기억하시나요?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어도 한 손에는 항상 책이 있었으면 한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생이었던 시절, 어느 날 엄마는 책을 사다 주었다. 동화책만 읽던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사회의 정규과정으로 진입하기 바로 직전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준 갈색 봉투에는 초록색의 작은 새와 함께 ‘교보문고’라고 적혀 있었고, 봉투 안에는 ‘오성관 한음’과 ‘나이팅게일’ 이렇게 두 권이 들어있었다. 처음으로 받아본 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다운 책이었다.


나는 ‘오성과 한음’보다는 나이팅게일에 빠져들었는데, 내가 자라온 세상과 다른  영국에서 자란 나이팅게일의 어린 시절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위인전이라는 것을 처음 읽어봤던 나는 책 중간마다 삽입된 예쁜 그리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하얀 얼굴의 나이팅게일을 보고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의 부록으로 실린 실제 나이팅게일의 모습, 살았던 곳, 나이팅게일 흉상 등의 흑백 사진을 보고 느꼈던 무서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마르고 여리 여리 할 것 같았던 내 상상 속의 그녀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모집이 크고 무서운 인상의 모습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록에 실린 나이팅게일은 노년의 모습이었던지라 어린 나에게 무서워 보였단 사실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부모님은 시내에 나갈 때면 책을 종종 사 주셨고, 나는 전부 재밌게 읽었다. 단 한 번도 사다 주신 책을 읽지 않은 적이 없었고, 심지어 여러 번 읽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듯하다. 책이 재밌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닐 나이가 되면서 혼자 광화문으로 나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찾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광화문 교보문고는 음반을 판매하는 핫트랙스가 매우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멜로디스라는 푸드코드가 있었다. 그 때문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고, 멜로디스에서 밥을 먹고 집에 가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었다. 아직도 우리 집에서 “광화문 갔다 올게”라는 문장은 “교보문고 갔다 올게”의 대체어일 정도로.


어느 날 집 근처에 동네 문고가 생겼다. 동네 문고에서는 책을 구매하면 10% 쿠폰을 주었고, 교보문고보다 할인하는 책이 많았다. 도서정가제 시행 전이다 보니 천 원으로도 꽤 괜찮은 책들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꽤 괜찮은 책이란 적당히 두껍고, 그러니까 싸지만, 너무 얇지 않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진 책을 말한다) 이렇다 보니, 시간을 내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광화문보다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동네 문고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몇 주 전에 우연히 동네 문고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해당 건물 자체를 리모델링하면서 동네 문고 역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어릴 적 추억들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운 기분이 갑자기 훅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감정이란.







내가 가진 습관 중 하나는, 좋은 습관인지는 모르겠으나,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는다. 보통 책을 구매한 그 당일 마지막 장을 봐야 잠을 잤고, 그 때문에 서점에서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바로 책 읽기에 돌입했다. 이 시기에는 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추리소설이던, 역사소설이던, 성장소설이던 소설은 한번 시작하면 완결을 봐야 한다. 이렇다 보니, 밥 먹으면서 책 읽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펼쳐보면 여기저기 김칫국물이나 짜장면 튀긴 자국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소설보다는 경영, 인문학 같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을 많이 읽다 보니, 밥을 먹으면서 책을 읽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정말 몰입되는 이야기를 발견하면 여지없이 손에 책을 들고 먹는다. 그리고 엄마한테 혼난다.


여전히 한 달에 3-5권 정도의 책을 구매하는 편인데, 도서관에서 빌려보지 않고 구매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빌려온 책에는 줄을 긋거나 빈 곳에 메모할 수가 없다. 책값으로 비용이 적지 않게 나가다 보니, 몇 번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낙서를 할 수 없어 집중에 안 되더라. 그래서 그냥 읽지 않고 바로 다음 날 반납했다. 그래서 요즘엔 알라딘 중고서점을 자주 이용한다. 물론 예전처럼 저렴하진 않지만, 깨끗한 책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면, 알라딘 앱을 실행시키고, 중고로 판매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집 근처 알라딘 매장이라면 다음날 방문해서 구매한다. 어릴 땐, 광화문과 방문이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알라딘 중고 서적 검색이 일상이다. 기술의 발전과 국가 정책의 변화만큼 나의 일상도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인생이란.








사람인지라 고치고 싶은 성격적 부분 그리고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그래도 나의 장점 단 한 가지만 꼽아보자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나가고, 기회가 있을 때면 나 자신을 책 읽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나의 정체성 중에 책 읽는 사람이라는 부분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해 준 부모님과 책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나이팅게일에게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 노년이 되어도 한 손에는 항상 책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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