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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iebee Sep 14. 2020

직장을 내려놓았다.

돌고 돌아 브런치


1년 전, 나는 직장을 내려놓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결혼...

아 물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보통 몸이 안 좋아져서 건강상의 문제로, 혹은 처음 입사할 때부터 첫 컨트랙트를 끝내는 게 목표였다고 떠들고 다니며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알고 있었다. 핑계라는 것을. 어쩌면 '경력단절'이라는 단어에 묶여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내 자신이 되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손 잡고  '결혼'이라는 목표를 눈 앞에 설정해두고 열심히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내 머릿속에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력시켰고, 0 또는 1의 답을 내려는 듯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기억 속의 나는 새하얗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마치 좌석 사이에 서서 승객들을 맞이하던 그 시절처럼 입꼬리가 아프도록 웃고 또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던 것 같다. 바빴고, 정신없었다. 아마도 내 평생 가장 화려했을 그 순간이 사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비행기에 앉아 한숨을 쉬는 순간 생각났다. '아.. 나 결혼했다 오늘.'



그리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거실 소파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렇게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남들은 내게 배부른 소리라고 했다. 심지어 옆에서 남편도 그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자신이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쇼핑하고 싶으면 쇼핑하고, 편히 쉬는 삶을 살아보라 권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바쁜 일상 가운데에서 쇼핑하고 밥 먹고 친구 만나고 노는 것. 월급이 통장을 스치는 스릴 넘치는 한 달 한 달은 너무 재밌는데, 판을 깔아주니 하기가 싫은 거다. 무료하고 지겨웠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었다.

혼자 카페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쳤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크게 적고 나열해나갔다. 독서, 끄적이기, 그림 그리기, 낙서, 캔들 공방, 강아지, 노래 듣기, 집순이, 카페와 커피, 적당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공부와 도서관, 꽃...

그렇다면 이 중에서 내가 잘하는 건? 책을 읽고 끄적이는 것. 적어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갑자기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열심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와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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