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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Apr 27. 2024

오스트리아 여행기



해외 연수를 가기 전,

 회사 업무처리할 내용이 많았고, 여행 준비물도 챙겨야 하고, 수업하는 학부모님들께 휴강안내도 해야 했다. 하나만 하기에도 버거운데 세 가지를 다 하려니 회사 업무에 실수를 한 적이 없는데 실수가 연달아 이어졌다.  종종 말썽이던 허리가 또 아파서 출국 전 하루 이틀 고생을 했다. 비행기를 오래 타야 하는데 허리가 잘 버텨줄지 빠듯한 일정인데 잘 따라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엎친데 덥친격으로
 감기에도 걸렸다. 4월에 환절기로 아이들과 학부모님 죄다 감기 바이러스로 골골대던 때 마스크를 꼭꼭 쓰며 철통방어를 했는데 나도 피해 갈 수 없더라. 콧물이 폭포수처럼 자꾸만 흘러 콧구멍 두 개를 틀어먹고 싶은 지경, 큰일이다. 

  유럽에 소매치기도 많다는데 어떻게 소지품을 잘 보관할지 걱정에 몸에 착 붙는 힙색을 혹시 몰라 두 개나 샀다.  꼼꼼히 챙겼는데도 무언가 빠뜨린 느낌이 계속 들었다. 잘 준비했음에도  괜한 불안감에  "아 몰라~ 여권만 잘 챙겨서 가자!!" 며 나는 혼자 큰소리를 치며 나를 계속 달래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전국에 1000여 명의 교사가 있고 그중 우수교사로 50명만 유럽을 간다. 회사에 보통 35과목을 적정과목으로 제시하는데 유럽 연수로 모인 선생님들은 60과목 이상이 대부분이다.  80과목과 100과목을 하는 교사도 있어서 정말 전국에 탑티어들이 다 모였구나 라는 생각에 그간 고개가 빳빳했던 나는 급 겸손해졌고, '조용히 있다가 가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공지사항을 전달받고 내가 속한 강남조에 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나를 포함해 모두 8명, 지나가며 얼굴만 알고 익힌 선생님이 2명 나머지 선생님들은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니 친한 선생님이 한분도 없다. 그런데 나 빼고 선생님들은 서로 다 친해 보인다.  어색한 웃음과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드리고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뿐 가는 길만 뒤에서 졸졸 따라다녔다. 공항에서 부터 자꾸 사진을 찍자고 하는데 마스크를 절대 벗지 않았고 사진도 같이 안 찍었다. 선생님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체중 늘어서 그런지 사진 속 내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선생님들과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렇게 재밌고 웃기고 감동이고 행복한 여행은 없었던 거 같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뻔 한 여행, 인생에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생겨서 감사했던 여행이었다. 여행의 순간마다 울컥 울음이 나올 듯한 감사와 감동의 순간들도 많았다. '00야~' 이름을 불러주며 내가 제일 어리다며 '막내야, 이쁜이, 딸내미, 이쁜 00' 라며 폭풍 칭찬과 사랑을 쏟아내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첫날부터 쉐부르 궁전에서부터 나는 마스크도 벗어던지고 여러 가지 웃긴 포즈, 섹시포즈, 엽기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선생님들을 계속 웃겼다. 빗장이 풀어져서 짖고 까불고 웃고 떠들고 한 게 얼마만인지.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지, 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지' 하며 나도 잊고 있던 나를 만났던 시간이기도 했다.  성향이 다르지만 우리 8명은 좌충우돌하며 여행 내내 서로를 알아가며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선생님들을 사랑하게 되기 까지 했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인 비엔나와 호수와 산이 아름다웠던 할슈타트, 모차르트 생가 잘츠부르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미라벨 정원, 프라하의 야경 등 유럽이라는 곳도 나는 잊지 못한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 찍어 앨범을 만드는 것처럼, 나는 글을 쓰며 그 순간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간직한다. 이번 여행기를 에세이나 소설로 기록해서 간직하고 싶을 정도다. 이 많은 이야기와 일들을 언제 다 쓰지라는 생각에 막막함이 들지만 안 쓸 수 없게 되는 때에 나는 또 쓰고 있겠지.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었지만 그때의 마음과 감정을 잊으면 안 되니까 일단 메모장에 줄줄 내 맘대로 적고 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던 릴리와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릴리는 내가 오스트리아로 간다고 하니 곧바로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집에서 지내고 가라고 했고 방문해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리고 혹시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어디 있을지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자신이 갈 수 있으면 찾아가겠다고. (전생에 릴리와 나는 무슨 사이였을까?)

 나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가이드님께 릴리가 보내온 주소의 지명을 물어봤더니 그 지역은 오스트리아에서 부자들만 사는 동네라는 말과 함께 비엔나에서는 5시간, 잘츠부르크에서 2시간 거리라고 했다. 너무 멀다..  나는 산과 나무, 꽃 사진만 보내오길래 릴리 아주머니는 시골 아주머니구나 했는데  의외의 정보도 듣게 되었다. 정말로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나의 개인 여행이 아니기도 했고 회사연수로 여러 도시를 계속 이동하며 다니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회사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고 또 릴리가 무리해서 만나러 오는 걸 나도 원하지 않아 9월에 한국에서 보자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오스트리아가 너무 좋았다, 잊을 수 없다.'는 말에 릴리는 재차 언제라도 오스트리아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메시지 만으로도 나는 이미 초대받았고 릴리 집에서 며칠을 묵은 거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개인 여행으로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향후 몇 년 나는 다른 계획이 있어 갈 수는 없다. 그래도 '릴리 아주머니 집에 가보기'를  버킷 리스트에 추가해 본다. 

  + 9월에 릴리가 한국에 온다. 릴리의 마음과 사랑을 이어 받아 나도 한국에서 더 좋은 추억과 시간들을 릴리에게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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