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에세이 | 바티칸 & 이탈리아 로마 02
피로에 지쳐간다. 테이블과 의자, 커피와 침대에 기대어 수 년을 지내왔다. 스스로의 뼈와 근육에 몸을 싣고 바티칸과 로마를 돌아다니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직장인으로 살아온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이것 뿐이었다. '버티는 것'.
아침부터 저녁까지 닷새 내내 로마와 바티칸을 걸어다녔다. 주요 관광지는 물론이거니와 바티칸과 로마 구석구석까지 걸었다. 애플 지도에 찍히는 성당을 거의 다 들어갔다 나왔을 정도니 이 정도면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그래, 처음 만난 유럽은 굉장했다. 산 피에트로 광장(성 베드로 광장)의 열주들은 천지가 개벽하고 땅에서 솟아오른 기암 절벽 같았고,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는 돌산(石山)을 파내 만든 듯 압도적이었다. 길을 걸으면 고대가 나오고, 곧이어 중세가, 근대가, 마치 이 곳에 도읍을 정한 유적들이 몰려들기라도 한 모양새였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곳에서 '버티고' 있는 걸까? 이 우아한 햇빛과 역사의 자태 속에서, 나는 왜 '우와 로봇'인 걸까? 갖가지 감탄사와 미소와 눈물을 반복해 쏟아내지만, 시간이 가도 가도 마음 속 공허가 채워지지 않았다. 이건 마치 감정을 쥐어짤 요소들로 뒤섞인 <어벤져스> 같은 것이었다. 화려한 볼거리, 영웅 심리를 자극하는 이야기, 재미, 즐거움, 웃음, 감동, 하물며 눈물도 있지만, 그 뿐이었다.
반복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AI의 인간성을 두고 질문하는 것이
정녕 인간의 역할이었던가?
(⋯) 그간 나는 얼마나
휴머노이드에 근접해야만 했던가.
생각, 마음, 정신, 정서, 기분과 느낌까지도 억압하며 살아왔다. 심지어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도 설득당해야만 하는 것이 삶이었다. AI의 인간성을 두고 질문하는 것이 정녕 인간의 역할이었던가? 고작 밥그릇을 지킬 목적으로 그간 나는 얼마나 휴머노이드*에 근접해야만 했던가.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
직장을 벗어나니 너무나 분명해졌다. 조직의 부속이었던 나는 이미 깡통이었고, 크리스트교 언어로는 '길 잃은 양'이었다. 엄마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버틸 힘이 필요할 때마다, 여행이 헛된 선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의미가 필요한 순간마다, 내가 인간임을 찾아내야할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에 매달렸다. 오래 전 보았던 미국 드라마*가 생각나 가끔 배꼽을 만져보았다.
*미국 드라마 <카일 XY(Kyle XY)>. 주인공 카일은 AI로 태어나 배꼽이 없다.
물론 바티칸과 로마가 엄마를 찾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성상(聖像)과 성화(聖畵)들, 그 중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은 단연코 대부분을 차지하니까. 성당과 박물관에서 '피에타(pietà)*'와 '마돈나(Madonna)*'는 몇 걸음에 한 번씩 등장한다. 다른 곳에서도 15~30분마다 한 번씩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소리를 매개로 어느 샌가 움튼 나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즉각 즉각 중단했다. 그리고 신과 엄마, 나 자신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려놓았다.
*피에타(pietà): '슬픔', '비탄'을 의미한다. 서구 문학과 예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주제 중 하나로,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다.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성 베드로 대성당)에 소재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유명하다.
*마돈나(Madonna): '나의 레이디'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 말이다. 마리아, 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이 또한 흔히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다.
⋯⋯그래서 마침내 새끼양이 엄마를 찾았냐고? 글쎄, 양을 구하는 것이 사자(死者)들의 역할인가?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길 잃은 양을 구한 것은 누구였지? 흥미롭지 않은가, 나를 구한 것은 '아버지'였다.
바티칸 산 피에트로 광장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교황 알현 행사(Udienza Generale; General Audience)가 열린다. 성 베드로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궐기 대회를 방불케 하는 사람들의 열광이 이어진다. 경건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신자들의 흥분과 열광, 관광지 분위기가 마구 뒤섞여 있는데, 이 묘한 분위기는 다른 어디에서도 겪을 수 없다.
교황이 등장하고, 곧이어 여러 유럽 언어들로 교황의 메시지가 전달되며, 마지막으로 광장의 각 구역 사이를 따라 교황이 움직인다. 카트 비슷한 것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금요일 저녁에는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 내부에서 열리는 사순 참회 예식(Celebrazione penitenziale; Penitential Service)에도 참여했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관광객이건 아니건, 가톨릭 본산에서 교황 집전 아래 뭔가에 참석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무질서하게 조금씩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로서는 한 번 눈 감고 기도할 마음의 평화도 찾기가 어렵다. 어떻게 교황은 그곳에서 고요와 경건함을 잃지 않고 그렇게 의식을 거행하는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볼 수 있다시피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주 부드러운 표정을 가졌고, 목소리에도 놀라운 나긋함이 서려있다. 그러다가도 안경을 쓰고 글을 검토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냉철한 이성 역시 찾아볼 수가 있다.
그 바쁘다는 모든 일정들 속에서, 냉정한 의사결정들이 필요한 쏟아지는 집무들 사이에서, 교황 내면의 평화와 자애로움은 그 목소리처럼 나긋나긋하게, 느릿느릿하게, 사근사근하게, 부드럽게, 그 무엇에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바쁘게 일하면서 날이 서 있던 내 모습과는 판이하다. 그 어떤 폭군들과도 다르다.
저것이 리더십이구나.
(⋯) 힘겨운 가운데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자 하며,
전쟁 가운데서도
휴머니즘을 호소하는
유럽의 리더십은 모두
저것을 닮은 것이로구나.
락스타들의 화려함도, 세력가들의 프라이드도 없이, 가볍고 흰 옷차림을 한 교황이 아이처럼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든다. 경비병들은 교황 근처가 아니라 광장에 몰린 사람들 가까이에 더 많다. 현란함과 화려함, 그 모든 것들이 결여되어 있는 그를 향해 경건함과 흥분의 양가감정이 뒤섞인 희한한 열광이 계속되었다.
'아, 저것이 리더십이구나.' 생각했다. '힘겨운 가운데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자 하며, 전쟁 가운데서도 휴머니즘을 호소하는 유럽의 리더십은 모두 저것을 닮은 것이로구나.'
열광이 자리하는 그 광경을 보며 순간 '우주대스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반짝 했으나, 이는 곧 숫기없는 얼굴로 물러서 자취를 감추었다. 우주대스타라는 표현을 앞에 두면, 그는 한사코 물러서리라. 바닥에 납작 엎드리리라. 그도 역시 하늘 아래에 있고, 신의 발 아래에 있는 인간이다. 그 직위는 명예롭기에 곁에 선 자들의 우러름과 시기를 받을 수 있겠으나, 이 모든 것들을 겸허히 납득하고 감사할 수 있는 숭고한 영광과 경건한 책임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신의 발치에 고개 숙인 채 죽음에 이르러 신의 품에 다가설 때까지 그 모든 여정은 신에 대한 겸허함으로 빛을 이루리라.
그리하여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권위주의를 등지고 여행자로 선 이 낯선 땅에서, 그리하여 기꺼이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교황의 모습 속에서 곧 신의 모습을 찾아냈다. 십자가에 못박히고 수난을 당하면서도, 예수는 인간을 용서하라 하였다. 그 얼굴에서도 목소리에서도 평화와 사랑이 사라지지 않았으리라. 그토록 거룩한 모습이었으리라.
종교가 두려움과 갖가지 교리들로 채워져 있을 지언정, 중세 이래 유럽을 지배해온 신은 본래적으로 압제자가 아니라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인간 중심의 그리스 문화와 신 중심의 크리스트교 문화가 화해한 지점은 바로 이 곳이었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아버지'이며, '아버지들의 아버지'로구나. 그리하여 이것이 널리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루었구나, 이해했다.
끝으로 헤매는 사람들이 좀 많은 것 같아 바티칸 티켓 신청 및 발권에 관한 경험을 덧붙인다.
티켓 신청을 팩스로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불안한 부분이 있다. 팩스를 사용해보면 알겠지만, 송신 후에도 수신자가 팩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꽤 빈번하다. 게다가 단체가 아닌 이상, 일반 가정에 팩스 둔 사람 또한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 인터넷 팩스를 사용했다. 신청서(Application form) 비고란에, 회신 받을 수 있는 팩스가 없으니 티켓 발급 확정 시 이메일로 회신을 달라고 적었다.
내가 신청한 티켓은 교황 알현 행사(General Audience)와 사순 참회 예식(Penitential Service) 총 2건이었으며, 두 건 모두 이메일 회신을 받았다.
이메일 서식으로 보아 팩스로 회신된다는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메일 하단에 자동 생성되는 메일이므로 회신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비고란에 적은 회신 요청은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사순 참회 예식 신청 건에 대해서는 3월 1일에 간신히 회신이 왔다. 시기가 늦은 것으로 미루어 공석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하며, 티켓 발급이 가능한 경우에만 이메일을 받을 수 있는 듯하다.
이메일 상에는 티켓 교부 장소와 일정, 예약 번호(Reg. No #####)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예약 번호를 가지고 브론즈 도어(Bronze Door) 안쪽의 사무실로 들어가면 사진과 같은 티켓을 교부받을 수 있다.
브론즈 도어는 산 피에트로 바실리카를 마주 선 위치에서 열주 오른쪽 끝에 위치해 있다. 가방 및 웃옷 스캐닝을 거쳐 성당 시설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며, 우측 샛길로 들어가면 스위스 경비병들이 브론즈 도어를 지키고 서 있다. 예약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 된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옥스퍼드 대학교 사서 같은 엄격해보이는 할아버지들 두 분이 티켓을 교부해주신다. 좀 엄격해보이기는 하지만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믿을 수 있고 다들 친절하다. 영어를 굉장히 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