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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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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성섭 Apr 29. 2024

전통 제사의 간소화

며칠 전 어머니 기일이어서 제사를 모셨다. 우리 조상들은 관혼상제(冠婚喪祭) 즉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관혼상제는 글자가 의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예의이다. 예의는 쉽게 말하면 사람이 사람의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을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일정한 기준을 정해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랜 관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규범이 예의이다. 예의관련 문헌으로는 중국의 경우 주희의 주자가례, 우리나라의 경우 이이의 격몽요결, 김장생의 가례집람, 이재의 사례편람 등이 있다. 이 예의은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어느 사회이든 있을 수밖에 없는 문화이다. 만약 이것이 없으면 그 사회는 안정과 질서와 평화를 유지할 수 없고, 존속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예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된다. 싫던 좋던 예의은 인간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규범이다. 


제례인 제사도 예의이다. 제사를 지내는 방법은 어떻게 하여야 하고, 제사를 모실 때 준비하여야 할 제수는 어떤 것을 준비하여야 하고, 제사상은 어떤 방법으로 차려야 하고를 정하여 놓았다. 우리의 전통 제사는 농업시대에 규정한 것이다. 지금은 산업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이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범람하고 소식과 지식 그리고 사람과 사물도 세계적으로 교류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제사도 바뀔 수밖에 없다. 


나는 제사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 제사를 무조건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이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제사 지내는 방법을 최근 바꾸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돌아가신 기일 새벽에 모시던 제사를 기일 저녁으로 바꾸었다. 옛날에는 생일상도 아침에 먹었다. 농업시대에는 가족이 모여 살고 일도 비슷하게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필요할 때 언제라도 모일 수 있었다. 저녁보다 아침이 더 정성스럽고 성의가 있다. 그래서 생일이나 제사를 새벽이나 아침에 치를 수 있었다. 최근 사회는 직장이 달라 아침에 모이기 어렵다. 저녁에 모이기가 쉽다. 생일은 자연스럽게 저녁에 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전통을 중시하는 제사는 최근에도 새벽에 지내는 경우가 많다. 새벽에 제사를 모시면 회사 출근도 어렵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일부 가정에서는 저녁에 제사를 모셨다. 단지 저녁 제사는 돌아가신 날 저녁에 모시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부 가정에서는 옛날 새벽에 제사 모신 것을 기일 전날 모신 것으로 생각하고 기일 전날 모시는 경우를 보았다. 이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옛날 새벽에 모신 것은 기일 새벽에 모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제수를 대폭적으로 간소화하였다. 사실 제수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생선이 많이 나는 바닷가는 생선을 많이 사용하며, 육류가 많이 나는 육지에선 고기를 많이 사용한다. 나는 어릴 때 바다가 가까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생선을 많이 사용하였다. 제수로 반드시 큰 생선을 사서 올렸다. 아내는 큰 생선을 찌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2년 전부터 큰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 조기만 사용하고 있다. 제수는 손님이 왔을 때 올리는 상과 비슷하다. 신위와 가까운 앞줄에 밥과 국, 그다음 줄에 고기와 생선, 전, 간장 그리고 명태 등 마른 어물, 그다음 줄에 채소류인 나물을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과일을 올린다. 물론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어동육서 등과 같은 상 차리는 방법이 있지만 이것을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단지 제수에 피하는 음식이 있었다. 귀신이 싫어한다는 복숭, 마늘 고춧가루 등 청결하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양념 등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대로 지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제수도 너무 따지다 보면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번잡할 수 있다. 따라서 떡이나 빵이나 피자 등 편하게 준비하면서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수로 사용하는 것도 앞으로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제사란 조상을 기리는 것이 목적이다. 후손이 모여 돌아가신 조상을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이런 음식을 꼭 사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절차와 준비를 복잡하고 어렵게 하여 후손이 예절을 지키려는 것을 귀찮게 여기게 하여, 그것을 폐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당시의 생활에 친근하게 함으로써, 전통 예절의 형식과는 다르지만 예절의 근본정신을 계승시키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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