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회사에도 진상이 있는데,
하물며 서비스직의 끝판왕인 승무원직은
내로라하는 진상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매너 좋은 손님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특정 나라 비행이나 승객에 따라 그날 하루의 희비가 갈린다.
비행기 타면 많은 돈을 내니
원하는 요구가 많아지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어딘가에 지불을 많이 하면 당연히 많은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의 특성상
조금의 배려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인류애를 원하는 걸까?
한 번은 내가 좀 더 주니어일 때 식사 서비스를 하던 중 있었던 일화다.
우리는 세 가지의 메뉴 옵션이 있는데
그중 베지테리언 밀이 가장 적게 실린다.
하필 내 존에 손님은 베지테리언 밀을 원했고
불행히도, 내가 보유하고 있던 건 다 떨어진 상태였다.
다른 크루들에게 물어보니
모든 재고가 소진된 상태였다.
우선 매뉴얼대로 손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불같은 화가 돌아왔다.
본인이 베지테리안이고 다른 음식을 못 먹는다면
사전에 주문을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님에게 티를 낼 수는 없으니, 다음에는 스페셜 밀을 사전 주문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드렸다.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 손님은 내게 화를 내고 소리치며 당장 가져오라고 했다.
모든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쳐다봤고,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고 생각해
슈퍼바이저에게 말씀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그전에 음료수 먼저 권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 떨어진 제로콜라를 달란다.
하지만 콜라야 내 카트에만 떨어진 것이고 갤리에 가면 아주 많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 하고 가져오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어이가 없다는 억양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Hey, It's Qatar airways~"
속으로는 열불 천불이 났지만
'나는 프로다'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나오지도 않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슈퍼바이저에게 달려가, 마치 아빠에게 일러바치는 어린아이처럼 미주알고주알 상황을 보고했다.
슈퍼바이저는 비프 메뉴를 열어보더니
야채랑 밥이 있길래 고기만 건져내고 주면 어떨지 손님에게 제안하라고 했다.
이게 가능할까 했지만
그 손님은 의외로 너무 좋다고 갑자기 또 기분 좋아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그의 감정기복.
하지만 그저 비프 없는 밥을 제공함으로써 화는 가라앉은 것이니
나에겐 '감정 기복이 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던 사건이었다.
2년 동안 비행을 하다 보니
이보다 더 한 진상에 별에 별사람도 다 만나봤다.
열이 받아서 씩씩대고 갤리에서 눈물이 차올라 울어도 봤지만
그럼에도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단연코 내 기억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3초 만에 까먹는 붕어 같은 기억력'
아무리 억울하고
열받는 일이 생겨도 비행기가 랜딩 하자마자 잊어버리고 만다.
한 일화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친구한테 카톡을 했다.
'야 나 오늘 진짜 열받는 일 있었는데?
아 진짜 그만둘 뻔도 했는데 뭐더라?
아 몰라, 기억 안 나.'
하고 또 룰루랄라 비행을 가는 붕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