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국제공항에서]
그렇게 호주에서 관광객이면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곳들을 여행하며 5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시드니는 10월이 가장 맑고 좋은 날씨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에, 큰 걱정 없는 여행자로서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길..... 후련하기보단 한편으론 너무 아쉽고 너무 막막했다.
한국에서 돌아갔을 때 더 이상 호주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 이만하면 됐다 호주에 대한 환상 이제 끝!이라는 미련 없는 마음이 생겨버려 나의 목표가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정말 우습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와서 눌러앉아버리면 되는걸 뭐가 그렇게 큰 변화를 겪고 두려운지 차라리 호주에서 백마 탄 왕자님이라도 만났다면, 명백하고 뚜렷한 이유가 생겼더라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좀 가벼웠을까. 이 또 한 그동안 내면의 기둥이 닳고 닳아져 약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기분을 잃지 않으려 공항에서 어떠한 감정도 미동하지 않을 때 핸드폰을 꺼내어 생각을 나열했다
“어느 날 문득, 하 팀장님이 생각이 났다. 시간이 흐르니 회사내에서의 팀장님의 예민하게만 느껴졌던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그래서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해줄 거라 생각했던 팀장님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그 사이에 팀장님의 세계는 넓어져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시드니 국제공항에 앉아 생각했다. 사실 그때 90년생이 온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읽고 나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의 일부가 또한 나의 생활이 되겠지. 경력없고 인맥없는 프리랜서의 삶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엉덩이가 가려운 사무실에 앉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일을 선택해야겠지.
(해당 책은 90년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 또한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회사 문화 측면에서 세대차이가 난다는 부분은 너무 공감하며 읽었다.)
무심코, 수많은 비행기들이 훑고 지나가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생긴 시드니의 하늘을 보며 또다시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수천 가지의 고민과 불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굿모닝 하며 웃고 한국에서와 다르게 고개도 들고 다니고 허리도 피고 기분이 좋으면 미소도 지으며 다녔는데
한국에 가면 또 고개를 숙이고 눈 마주치는 사람에게 쉽게 불안과 분노를 느끼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나는 익숙한 곳에서 더 겁을 먹을까. 그래서 낯선곳에서 더 여유를 느끼고 더 잘지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빠지게 되는걸까.
지금 메모장에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답답한지 크게 한숨을 쉰다.
나도 내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가 내 인생에 맞춰진 표지판을 들고 와서 안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을 쉽게 살아갈 가이드가 필요하다. 불안정한 20대의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었으면 좋겠다. 만성피로처럼 만성걱정을 달고사는 습관도 이제 멈추고싶다.”
이렇게 메모를 적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