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했다. 다른 이보다 늦은 나이에 초보 딱지를 붙이고 운전을 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사 일로 강원도까지 운전해서 간 일이 있었다. 첫 장거리 운전이라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그런데 그날 날씨가 참 변화무쌍했던 게, 장마철도 아닌데 갑자스런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쏟아붓는 비에다 안개까지 살짝 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날씨에서 고속도로를 타는 것은 처음인 터라 당황스럽고 겁도 났다.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갑자기 날씨가 활짝 개이면서 햇살이 짠하고 비치는, 그런 반전 따위의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 열악한 운전 환경에서 모든 자동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행하며 운전하는 모습, 그 모습이 나에겐 무척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다름 아닌 '인류애'였다. 그리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타심과 이기심의 절묘한 균형'이었다. 마치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시절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남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썼던 것처럼. 나를 지키겠다는 이기심과 남에게도 조심해서 가라는 이타심이 서로 어우러져 비상등과 함께 깜빡이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이 아닐까, 운전하면서 처음 얻은 깨달음이었다.
옛이야기 중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선비가 밤중에 길을 가는데 저 멀리서 등불을 들고 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그를 가까이서 본 선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앞을 보지 못하는데, 등불을 들고 가는 이유가 뭐냐고 선비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이 등불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운전자의 시야를 가로막는 폭우 앞에서 비상등을 켜는 이유는, 이 불빛을 보고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이타심도 있지만 내 차에 부딪치는 말라는 이기심도 동시에 담겨 있다. 즉, 이타이기(利他利己)의 마음이다. 그 시각장애인 역시 같은 마음으로 등불을 들고 다닌 것이리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는 뜻의 이타이기(利他利己)의 한자를 풀어보자. 이롭다는 뜻을 가진 한자 '利'(이로울 리)는 '禾'(벼 화)와 刀(칼 도)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칼로 벼를 벤다는 건 농부가 벼를 수확하는 것이니, 곧 이익을 뜻한다. '他'(남 타)는 '人'(사람 인)과 '也'(어조사 야)가 결합했는데, 也는 뱀이 똬리 튼 모양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뱀처럼 쌀쌀맞은 사람이 남이라는 의미다. '己'(자기 기)는 사람이 무릎 꿇은 모습이라는 설도 있고, 밧줄 모양을 뜻한다는 설도 있다. 무릎 꿇은 모습이든, 밧줄로 묶은 모습이든 스스로 절제하는 사람을 뜻한다 볼 수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이기심이라는 말도 사실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절제할 수 있을 정도의 이익을 좇는 것이 이기심이란 단어에 포함된 己의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절제선이고, 양심이다.
'이타이기'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쌀쌀맞은 남에게도 이익을 베풀 줄 알고, 동시에 나의 이익도 추구하되 지나친 욕심은 갖지 않는다. 위험한 도로 상황이지만 함께 비상등을 켜고 조심히 운전해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그 마음이 '이타이기'의 마음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