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흉악(凶惡)한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내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어르신이 보험을 드신 게 있는데 그 보험사에서 대출이 완료되었다는 안내 문자 한 통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대출이 진행되었다는 문자에 깜짝 놀라 보험사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실제로 대출이 진행된 기록은 전혀 없었다. 보이스피싱 문자였던 것이다. 툭하면 날아오는 보이스피싱 문자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싶어 상담차 방문한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휴대폰을 바꾸면 더 이상 보이스피싱 문자가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 말을 믿고 아직 약정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멀쩡한 휴대폰을, 통신사 이동까지 하며 교체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휴대폰 교체 후에도 보이스피싱 문자는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전화번호와 개인정보 누출 때문에 보이스피싱 대상이 된 것인데, 휴대폰 교체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을 하는 놈들이나, 그걸 빌미로 폰을 팔아먹는 놈들이나, 세상에 흉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그것도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아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어르신을 상대로 말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등쳐먹으려는 경험은 나 역시도 얼마 전에 당한 적 있다. 이제 운전을 시작한 초보운전자라 짧은 시간 동안 참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는데, 얼마 전 차도 옆의 연석을 잘못 긁어서 타이어가 찢어져 터지는 일이 있었다. 처음 겪는 일에 크게 당황했고, 일단 견인차를 불러 가까운 타이어샵으로 향했다. 차에 '초보운전'이라고 크게 써붙여놨으니, 타이어샵 점주는 내가 초보운전자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는 타이어가 수입산이기 때문에 주문 후 수령까지 최소 2주는 걸릴 수 있다며, 마침 재고로 비축하고 있는 국산타이어로 교체하기를 권유했다. 또 한쪽 타이어만 다른 것으로 바꾸면 승차감이 안 좋아지니, 반대쪽 타이어도 교체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수입타이어 가격은 1개에 36만 원이지만, 국산타이어는 2개에 35만 원으로 더 싸게 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하면서. 타이어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일단 가격은 그렇다 치고, 타이어를 짝짝이로 달고 주행한다는 것이 영 찝찝했다. 그것도 차를 산 지 고작 석 달밖에 안된 시점에 말이다. 그래서 내 차 타이어 모델을 인터넷으로 직접 서핑해 봤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타이어 가격은 배송비까지 더해도 17만 5천 원인 데다 배송도 하루면 가능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타이어를 내가 직접 구매 배송받고 타이어 교체 서비스만 요청드리겠다고 했더니 방금까지도 친절하던 그의 태도가 매우 불친절하게 돌변하는 모습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 더 벌겠다는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초보운전자가 잘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상황을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그 마음씨가 참 고약해 보여 씁쓸했다. 내 눈에는 흉악해 보이는 마음이 아닐 수 없었다.
'흉악'(凶惡)이란 단어에 들어가는 한자 중 하나인 '凶'(흉할 흉)은 일단 그 모양이 흥미롭다. 마치 만화책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악당처럼 생겼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한자는 사실 얼굴 흉터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짐승을 사냥할 때 만드는 함정을 표현한 한자다. '凵'(입 벌릴 감)은 구덩이 모양이고, '㐅'(다섯 오)는 그 구덩이 함정에 빠진 짐승을 표현한다. 마치 보이스피싱범들이 문자를 보내며 파는 함정이나, 그 보이스피싱 불안감을 이용해서 폰을 사도록 유도하는 함정과 닮지 않았는가?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凶이 '흉하다'는 뜻뿐만 아니라 '운수가 나쁘다'는 뜻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스피싱을 하는 자들이 나쁜 놈들인 건데 되려 그 범죄 피해자를 향해 운이 나빴다고 말하거나, 얼마나 조심성이 없었길래 그런 것에 낚이냐고 마치 피해자 잘못인 마냥 치부하는 일부 행태에 일침을 놓는 듯하다.
'亞'(버금 아)와 '心'(마음 심)이 결합한 한자인 '惡'(악할 악)에서 亞는 사면이 꽉 막힌 집을 표현하는데, 마치 감옥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을 凶에 몰아넣고 자기 이익에만 탐하는 사람은 결국 亞에 갇히는 신세가 될 것이다. 亞가 꼭 물리적 감옥만을 뜻하겠는가. 본인의 악한 행동이 업보가 되어 결국 세상에서 외면받고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면 그곳이 곧 감옥이나 다름없을 터이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남을 함부로 凶에 몰아넣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亞에 갇히고 말 것이라는 것, 그것이 흉악한 마음을 품은 자가 걷게 될 말로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