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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Sep 28. 2024

내가 만든 평화 그런데 이제 여유를 곁들인

세상에 자연스러운 평화는 없다. 백수가 되면 많은 것이 당연해진다.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 쓰레기통이 훨씬 빨리 차는 것, 그래서 청소를 해도해도 끝이 안나는 일까지. 그렇다고 해도 언제나 집이 반짝반짝하도록 늘 빡세게 청소를 해놓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다. 마음껏 나른해진 몸이 잘 안움직여지게 마련이다. 외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었던 직장인 시절의 집이 더 깨끗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청소에 공을 쏟게 되는 것은 나의 백수생활이 일련의 비참한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이른 오후부터 베란다며 화장실이며 광이 나게 닦고 나서 한 숨 쉬고 나니 가을 저녁의 햇살이 촤르르 들어온다. 노란 빛이 몰고 오는 열기에 비현실적인 감상이 몽롱하게 몰려 오지만 퍽 보기에 좋다. 이런 아득한 평화는 당연하게 오지 않는다. 아득바득 티없이 살아내고 싶은 발버둥이 만들어낸 광경이다.


쓰레기며 물건이며 한가득 비워내고 나니 신혼 때나 즐기던 집안 인테리어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비싼 인테리어 오브제는 계륵같다가도 이런 때 보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결혼 준비할 때나 누렸던 경제적 여유, 그니까 돈이 화려하게 많았다기보다는 돈을 화려하게 많이 써도 되었던 그 상황적 여유가 만들어준 호사다. 무엇이든 물리적인 양 보다도 내가 가진 여유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당장에 할 일이 뚝 떨어져 멍하게 허공을 보다가도 벽에 비친 빛이 예뻐 대뜸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으니. 마음을 굳게 먹고 매직스펀지와 돌돌이를 꺼낼 여유, 스탠딩 램프 사이사이를 물티슈로 정성스레 닦을 여유, 이건 시간적 여유를 말하네. 백수라서 누릴 수 있는 상황적 여유일지도. 그러나 이 모든 여유 또한 그냥 오지 않았다는 것.



에어컨을, 선풍기를, 창문을 좀처럼 가만 둘 수 없는 변덕스러운 가을 날씨에 어지럼증을 느끼며. 오후 5시면 작열하며 안방까지 훅 들어오는 서향 노을을 찍는다. 언젠가는 여름보다 더한 이 주황색 뜨거움을 혐오하기도 했다. 왠지 이상한 기분을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지어 퇴근길이면 그 마음은 더 강해져서 어떤 시상이나 아주 긴 글감을 떠올리게도 했다. 시간적, 상황적 여유를 가진 직은에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생네컷처럼 니뉘어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풍경이 컷마다 다르다. 청명한 가을 하늘 색이 푸르면서 동시에 뜨겁다. 여러 장면을 한 장면에 그려 넣었다는 복잡한 미술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게 완전히 허영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에는 복작한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당연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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